박모니카 수필가

활자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나의 영(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벗이여,
그대의 말을 고개 숙이고 듣는 것이
그대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
마음에 들지 않어라.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어라.
이 황혼도 저 돌벽 아래 잡초도
담장의 푸른 페인트 빛도
저 고요함도 이 고요함도.



그대의 정의도 우리들의 섬세(纖細)도
행동의 죽음에서 나오는
이 욕된 교외(郊外)에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어라.



그대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우스워라 나의 영(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달나라의 장난>(1959)



<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여기에서 사령(死靈)이란 죽어있는 영혼을 말하지만 사실 죽은 듯 죽지 않은 영혼으로 해석된다. 스스로 마땅히 실현해야 할 가치를 위해 행동으로 나서야 하나 그러지 못하는 자신을 책망하는 맑은 양심의 소리로 들리는 것은 왜일까. 김수영 시인이‘고개 숙이고 듣는 것’은 시대적으로 혼돈스러운 상황 속에서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과감한 행동으로 규탄해야 함에 공감하면서도 직접 행동으로 뛰어들지 못하는 지식인의 부끄러운 아픔일 것만 같다. ‘행동의 죽음에서 나오는 이 욕된 교외(郊外)에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어라.’고 했으며 ‘말없이 있는 것이 편치않은 고요인 것을 자각하고 있고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공허함에 ‘우스워라’라며 자조적 웃음을 띄우는 것이다.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방관하는 소시민적 안일한 자신의 모습을 자아비판한 시다. 이런 솔직함이 시인을 돋보이게 한다. 영혼이 죽어있음을 깨닫고 인정하는 용기에 우리를 반성하게 한다. 존경스러운 마음에 휩싸이게 된다. 과연 요즘 시인들은, 혹은 작가들은 이처럼 자신의 사령(死靈)을 드러낼 수 있을까 <박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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