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문 한동대 교수

 요즈음 역사물을 많이 보는데, 그 중 관심있는 분야가 1860년대 중후반부터 1945년 경까지의 우리 해외동포들의 삶이다. 해외동포라면 재미동포, 제일동포, 재중동포들도 있지만 지금은 까레이스키로 불리는 러시아와 인근 구 소련이었던 나라들의 고려인들이다. 근래 포항의 한 절친이 러시아 하산에서 농사를 짓고 있고, 블라디보스톡에 살던 재러동포 부부가 필자 동네 인근에 살고 있기에 자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오래전 이야기들은 들을 수 없기에 보통은 책자나 인터넷 기사를 통해 오래전 이야기들을 접하고 있었다. 요즈음은 TV 다큐멘터리나 유튜브를 통해서 좀 더 구체적인 역사들을 찾아낼 수 있다.

요즈음 본 고려인에 관한 유튜브는 2014년 소치올림픽 남자피겨 동메달리스트인 카자흐스탄 국적의 데니스 텐으로부터 출발했다. 우리는 TV뉴스 등을 보고 그가 우리 동포인 고려인이라는 것만을 알았지 그 조상과 카자흐스탄에 살고 있는 그의 친척 및 다른 고려인들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었다. 그와 100여명에 이르는 그의 친척들은 조선 멸망 후 의병대장으로 활동했던 민긍호의 후손이며 카자흐스탄에는 이러한 고려인들 10만 8천명이 살고 있다. 전체 러시아와 인근 중앙아시아에 50만명의 고려인이 거주하고 있다.

다음 이야기는 이르쿠츠크에 살고 있는 한 러시아 가족들의 이야기였는데, 모두들 러시안 같이 보이지만 이들은 지금 가장 연장자인 할머니의 할아버지가 조선인 김인수라는 분이었고 한국 방송국에서 수소문해 알아보니 그는 조선말 고종의 시종무관이었던 사람이었다가 러시아 혁명 전 러시아 제국군대의 장교가 되었다. 또 다른 이야기는 1차대전 중 독일군에 포로가 된 10만명 러시아 군사 중 동양사람들이 있어 알아보니 모두 연해주, 특히 하산 출신의 고려인들이었는데, 이들이 남긴 육성 특히 아리랑이며 조국 독립을 그리는 노랫말들이 인상적이었다.

조선이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후 많은 조선의 군인들이 독립군이 되어 북간도며 연해주로 떠났지만, 그전인 1860년대부터 이미 우리 조선인들은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 하산지역으로 넘어가 마을을 꾸미고 벼농사와 밭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조선말 정부는 부패했고 가난한 농민들은 심한 수탈에 먹고 살길이 없었고 더구나 흉년이 심해 먹고 살아야 하기에 춥고 황무지뿐인 하산으로 떠났고 그곳을 옥토로 가꾸었다. 그리고 조선 멸망 후 북간도의 여러마을과 같이 이곳도 독립운동의 본거지가 되었었다. 러시아는 인력 확보를 위해 조선인들의 국경 침범을 묵인하고 있었기에 조선인들의 이주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937년 8월 21일 스탈린이 고려인의 중앙아시아 이주를 통보했다. 오직 3~7일 전에야 이주를 통보해 고려인들이 제대로 대응할 시간을 주지 않았고 수많은 한인들이 무기력하게 기차에 실려 머나먼 중앙아시아로 끌려갔다.

한인 강제 이주는 당대 소련을 휩쓸었던 대숙청 광풍의 하나였다. 9월에 이루어진 이주는 11월에 종료되었고 열악한 환경 때문에 수백 명이 넘는 한인들이 기차 안에서 죽어 나갔다. 그 결과 한인 172,481명 (우즈베키스탄 76,526명, 카자흐스탄 95,256명 등)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된 것이다. 현재 고려인들은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그리고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지역에 주로 밀집해 있다. 구소련 붕괴 후 중앙아시아 독립 국가들의 민족주의 성향이 강해지면서 외지인인 고려인들을 박대하고 자민족을 우대하는 경향이 커지자 요즈음 고려인들이 옛 고향인 연해주로 돌아오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중앙아시아에는 구소련 국적을 잃고 새로운 국적을 얻지 못해 무국적자로 국가의 혜택 없이 살아가는 고려인이 5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러시아 측에서는 인구 증가에 도움이 되므로 연해주로 이주하는 고려인들에게 정착비를 주는 등의 지원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중앙아시아며 러시아를 배경으로 살아가던 고려인들이 선뜻 삶의 터전을 옮기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는 연해주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에 맞서 고려인들로 균형을 맞추려 시도하고 있고, 한국을 통한 경협에 적극적인 입장이라고 한다. 사할린 동포들은 좀 다른 역사를 지니고 있다. 사할린은 이차대전 이전 일본 영토였고 수많은 조선인들이 강제노동을 하던 곳인데, 그후 이곳은 소련 영토가 되고, 이들은 조국 독립 이후에도 되돌아오지 못한 한을 지닌 분들이고 그들의 자손들이다. 지금 사할린에는 30,000명의 동포가 살고 있으며 3,500명은 귀환했다.

우리 정부도 이들을 위한 지원책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을 하지만, 경북도와 포항시로서도 이들과의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이들이 이 지역에 귀환하여 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도 좋을 것 같다. 필자가 재직하는 한동대에도 이들 지역에서 유학 온 고려인 학생들이 여럿이지만, 이들의 한국 대학 유학은 물론 졸업 후에도 이곳에 남아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주어야 할 것이다. 이들은 러시아어, 카자흐스탄어, 영어, 한국어 등 여러 언어에 능통한 경우가 많고, 러시아인 등 외국인 경우와 달리 조국애도 애틋하기에 이들이 우리나라에 거주하거나 다시 돌아가더라도 우리나라의 환동해권이나 중앙아시아 진출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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