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승 여행가

▲ 멀리서 바라본 헤파이스토스 신전.

   
▲ 가까이에서 본 헤파이스토스 신전의 기둥과 천장.

 헤파이스토스 신전은 파르테논 신전 보다 먼저 건립되었음에도 어느 신전보다 보존상태가 좋다. 복원을 해서인지 도리아식 기둥도 굳건하게 서 있었다. 지붕도 비교적 양호했다. 다만 맞배지붕이 형성한 삼각공간인 페디먼트(박공)와 그 아랫부분인 메토프를 장식한 조각품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은 눈에 띄었다. 화재의 흔적인지 검게 그을린 천정도 눈에 띈다. 자세히 보니 내부의 기둥들이 검게 그을려 있다. 불을 다루는 대장장이 헤파이스토스의 신전이니 그럴 만도 하다.
제우스와 헤라 사이에서 난 헤파이스토스는 선천적인 장애인이었다. 다리를 절었다. 그의 아내인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여기 저기 염문을 뿌리며 다녀 그의 속을 태웠다. 심지어 그의 동생인 전쟁의 신 아레스와도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대장장이 장인 신으로서의 헤파이스토스는 매우 성실했다. 그가 만든 작품으로는 제우스의 창과 도끼를 비롯하여 포세이돈의 삼지창, 에로스의 활과 화살, 프로메테우스의 쇠사슬, 판도라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가 인간세계에 끼친 영향도 생각보다 훨씬 크다.
헤파이스토스 이전 장인의 신이었던 프로메테우스(먼저 아는 자)는 제우스의 명령을 받아 신의 형상과 감정을 닮은 인간을 만든다.(처음에 그는 남자만 창조했다) 올림포스의 신들이 출현하기 전부터 존재했던 티탄 신족 출신이었던 그는 인간을 사랑해서 인간이 신들로부터 자유롭게 살기를 바랐다.
창조주라면 응당 그래야 하지만 이런 그의 행동은 제우스의 노여움을 샀다. 제우스는 단점 투성이의 인간을 멸종시키고 새로운 인간을 창조하려고 했다. 그는 인간으로부터 불을 빼앗아 버렸다.
프로메테우스는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에서 몰래 불을 훔쳐 인간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불을 돌려받은 인간세상은 큰 발전을 이루었고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의 존경을 받았다.
제우스는 자신의 권위에 도전한 프로메테우스를 코카서스 바위산 절벽에 매달았다. 프로메테우스는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쇠사슬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아야 했다. 매일 독수리에게 뜯어 먹혀도 간은 계속 재생되었으므로 그의 형벌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용서를 빌고 사면 받으라는 회유에도 넘어가지 않은 확신범이자 양심수였다. 그는 끝까지 제우스를 조롱하며 저항했다. 매일 이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인간을 배신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만든 인간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고자 했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겼다.
프로메테우스에게 코카서스의 형벌을 준 것만으로는 분이 풀리지 않았던 제우스는 인간을 완전히 파멸시키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남성만으로 구성된 인간세계에 여성을 내려 보내기로 한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판도라(모든 선물을 다 받은 자).
판도라는 제우스가 헤파이스토스에게 아프로디테를 닮은 아름다운 여자인간을 만들라고 지시해서 만든 최초의 여성이었다.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뒤늦게 아는 자)에게 판도라를 아내로 삼으라며 선물했다. ‘먼저 아는 자’ 인 프로메테우스는 이미 에피메테우스에게 제우스의 어떤 선물도 받지 말 것을 당부해 두었지만 판도라의 미모에 눈이 먼 ‘뒤늦게 아는 자’ 에페메테우스는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고 만다.
어느 날 제우스는 판도라에게 항아리 하나를 준다. 이름 하여 판도라의 상자다. 프로메테우스와 그의 피조물 인간에 대한 적개심으로 불탔던 제우스는 판도라에게 항아리를 건네주며 치명적인 한 마디를 건넨다.
“절대로 이걸 열어 보지 마라.”
제우스가 괜히 신들의 왕이겠는가. 그는 천재적인 책략가였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고 하는 순간부터 코끼리는 그 사람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게 된다는 사실을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나 판도라는 호기심에 못 이겨 결국 항아리를 열어 보게 된다.
그녀의 호기심은 인간세계를 파탄으로 이끄는 질병, 슬픔, 절망, 전쟁, 질투, 분노 등을 쏟아져 나오게 했다. 판도라가 깜짝 놀라 항아리 뚜껑을 닫았을 때 유일하게 남게 된 것은 ‘희망’이었다.
이리하여 인간세계를 온갖 악한 것들이 뒤덮었으나 그래도 인간에게 희망이 남아 있다는 달콤한 이야기가 퍼지게 되었다.
그런데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게 있다. 제우스는 왜 인간을 파멸시킬 만악의 근원들과 함께 희망을 넣어둔 것일까. 혹시 희망이라는 것도 원래 인간을 파멸시키는 바이러스인데 인간이 오해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희망이 제우스의 저주든, 자비든 바깥으로 나와야 제 역할을 할 텐데 여전히 항아리 안에 들어 있으니 늘 희망은 신기루처럼 잡히지 않는 것 아닐까. 오히려 판도라가 상자를 닫아버리지 않았다면 이 인간세상에 그나마 희망이 있게 되지 않았을까.
한편 코카서스 절벽에서 3만년 동안(이 기간은 여러 버전이 있다) 형벌을 받던 프로메테우스는 영웅 헤라클레스의 도움으로 독수리를 죽이고 쇠사슬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는 제우스와 극적으로 화해하게 되고, 마침내 인간에 대한 신의 통제와 간섭을 최소화하기로 합의하기에 이른다. 프로메테우스 덕분에 신과 인간이 주종관계가 아닌 별개의 존재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로써 프로메테우스는 불의한 힘 앞에 굴복하지 않는 저항정신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내기 위해 절대권력에 맞서 싸운 고독한 전사였을 뿐만 아니라 인류의 정신문명에 서광을 열어준 선지자의 상징이 되었다.
그는 ‘먼저 아는 자(선지자)’답게 인간에게 불(지혜와 문명)을 전해 주어 인간으로 하여금 신과 대등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해 주었다. 오늘날 프롤로그(prologue)와 예언자(prophet) 등의 접두사 ‘프로’는 프로메테우스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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