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승 여행가

▲ 소크라테스(좌)와 공자(우)

 제우스보다 뛰어난 예지력,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은 물론 고독과 불의에 맞서 싸우는 불굴의 저항정신까지 갖춘 프로메테우스는 영웅의 모든 서사를 다 갖춘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는 인간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 오히려 영웅이라는 칭호를 거부하며 우상 파괴의 상징이기를 원한다.
헤파이스토스 신전을 떠나 다시 아고라를 거닐던 중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광경을 만났다. 2,500년 전 비슷한 시기에 중국와 그리스에서 인류에게 불을 전해 주었던 두 철학자가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장면이었다. 공자와 소크라테스였다.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두 성인이 만나 대화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무릎 높이의 기단 위에 실물 크기의 두 철학자 동상은 서로 비스듬히 마주 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그리스 전통의상 히메이션을 걸치고 뭔가 말을 하는 듯한 표정과 동작을 하고 있다. 공자는 춘추전국시대 특유의 의상 심의(深衣)를 입고 두 손을 가슴 앞에 단정히 모아잡고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들의 등 뒤로 아크로폴리스가 보인다.
기단에는 소크라테스와 공자의 만남과 대화라는 영문과 한문 제목이 새겨져 있다. 이 리얼리즘적 상상력은 중국의 조각가 우웨이산에 의해 2021년에 구현되었다. 덕분에 나는 생각지도 않았던 소크라테스, 공자 두 성인을 동시에 만나는 비현실적 경험을 하게 되었다.
다음은 조각가의 리얼리즘적 상상력에 나의 쉬르리얼리즘적 상상력을 가미하여 세 사람의 대화를 그리스 희곡 식으로 기록한 내용이다.

(소크라테스와 공자가 대화를 나누는 도중 아시아에서 온 한 여행자가 등장한다)
여행자: 여기서 두 스승님을 뵙게 되어서 정말 기쁩니다. 한 자리에서 두 분을 함께 뵙는 기회에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여쭈어 보겠습니다.
소크라테스: 어서 오시오. 궁금하다는 것은 무지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니 아주 좋은 현상이오.
공자: 보자마자 스승님으로 부르며 인사하는 모습을 보니 아주 예의가 바른 것 같소.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일만큼 기쁜 일이 또 어디 있겠소?
(여행자가 존경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두 성인을 번갈아 본다)
여행자: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핍박을 받으면서도 불을 훔쳐 주는 등 끝까지 인간들을 이롭게 해주었습니다. 두 분 스승님은 2,500여 년 동안 인류에게 지식과 지혜의 불을 전해 인간의 정신을 계도해 주셨다는 점에서 또 다른 프로메테우스가 아닌가 합니다. 두 분의 가르침대로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며 무지로부터 벗어나고자 노력한 덕분에 오늘날의 문명은 두 분의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진화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지금은 인공지능시대라고 합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지능을 능가하고 마침내 인간을 지배해서 파멸로 이끌어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마저 안겨주고 있습니다. 두 분 스승님께서 강조하셨던 지식은 이제 인공지능이 인간을 압도하고 있고 인간은 인공지능의 지식에 의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시대에 인간의 지식과 지혜는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가지는지 알고 싶습니다,

소크라테스: 아무리 인공지능시대라고 해도 인간이 지식과 지혜를 추구해야 한다는 점은 달라질 게 없다오. 내가 강조한 지식은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행동하는 지식이라네. 도덕적인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지식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거나 악의 편이라네. 정보와 지식의 양은 인공지능을 따라갈 수 없더라도 인간만의 다양하고 깊은 지식을 기반으로 한 지혜를 갖출 수 있다면 크게 두려워할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오.
공자: 그렇습니다. 우리 시대에는 지식을 크게 강조했지만 이제는 지혜가 아주 중요해 졌습니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토대로 기계적인 판단을 내리는 인공지능은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여행자: 지혜도 결국 정보와 지식을 기반으로 솔루션을 찾는 힘이라고 본다면 인공지능에게 지혜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소크라테스: (빙긋이 웃으며) 그대는 지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오?
여행자: 지혜란 정보와 지식, 즉 점으로 존재하는 각각의 데이터를 서로 선으로 연결해서 문제를 해결해 내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인간의 지혜는 인공지능을 영원히 따라 잡을 수 없을 것입니다,
소크라테스: 그대는 지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시오?
(여행자의 표정에는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의지가 잘 드러나고 있다)
여행자: (뒤통수를 긁적이며)잘 안다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저 제 수준에서 드린 대답일 뿐입니다.
소크라테스: 내가 무지에 대한 지를 강조한 것은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메타인지를 강조한 것인데 그대가 방금 ‘내가 지혜에 대해서 잘 안다고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한 것이 바로 그것이라네. 지혜란 곧 메타인지력인데 이것은 인공지능으로서는 아직 불가능한 영역이지.
여행자: 소크라테스 선생님은 젊은 시절 필로폰네소스 전쟁에 참여하셔서 후퇴할 때도 다른 전우들을 챙기고 맨 마지막에 적진을 빠져 나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것은 공자 선생님의 <논어> 옹야편의 다음 대목을 떠올리게 합니다.
“자왈 맹지반불벌 분이전 장입문 책기마왈 비감후야 마부진야” (子曰 孟之反不伐 奔而殿 將入門 策其馬曰 非敢後也 馬不進也 공자께서 말씀하시되, 맹지반은 자기 공로를 자랑 하지 않는다. 전쟁에서 후퇴하면서도 맨 뒤에서 적을 막으며 왔으며, 막 성문에 들어설 무렵에야 말에 채찍질을 하면서 ‘내가 감히 뒤처지려 한 것이 아니라, 말이 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했었지”)
이런 행동은 메타인지력이 높은 사람만이 할 수 있고, 인공지능은 할 수 없는 행동이라는 것에 동의합니다.
공자: 소크라테스 선생께서 인공지능과는 달리 인간은 메타인지가 가능한 존재이므로 인간만이 진정한 지혜를 가질 수 있다고 하신 말씀에 동감합니다. 하나 더 보탠다면 참 지혜란 단순한 정보의 연결에 의한 문제해결능력 뿐만 아니라 사물에 대한 직관적인 이해, 도덕적 판단, 자신에 대한 성찰 등을 포함한 훨씬 더 복합적인 개념입니다.
여행자: 방금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저는 지혜라기보다는 지성이라고 이해합니다. 지혜는 반드시 도덕적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흔히 ‘세상을 사는 지혜’라고 말할 때 지혜란 도덕적인 행위보다는 영리한 행위에 더 무게 중심을 두고 있지 않습니까? 선생님께서 사셨던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들을 보면 더 확실하지요. 비윤리적, 비도덕적이라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상황을 바꾸어 놓는 능력이 있으면 지혜롭다고 말했고, 오늘날도 지혜는 그런 의미로 더 개념화된 것이 사실입니다,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