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모니카 수필가

비로소 봄을 나누다
눈 감았다 뜨면 꽃 한 송이 피어나듯
마음을 나눴던 것과 같이
혹은 그보다 더한 그 무엇을
오늘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春分
과연 나누는 일 사이좋게 애틋하다 애틋하게 함부로
밤에 피어나기를 즐겨했던 꽃, 몸들
문득 종이 한 장을 절반으로 나눠
편지를 주고받던 그 풍경을 기억이라 부르자
지나간 문장을 읽을 때 차오르는 무엇을
구슬 같은 눈물이라고 부르지 말자
텅 빈 동공에 풍경이 차오르고 있으므로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헤어짐을
이별이라 부를 때
중력을 이겨내며 힘껏 갈라섬을
작별이라 부르지 말자, 모쪼록
저기 안 보이는 커다란 손이
낮과 밤의 경계를 붉게 가르듯
모든 우리라는 이름은
한 사람과 다른 한 사람으로 돌아간다
알고 있지 하나의 선을 지키기 위해
너무 많은 악이 필요했다는 걸
깊어지는 것으로 말하는 그늘진 얼굴처럼
꽃의 온몸에 밤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이제 한낮의 그 고운 구슬들이
밤의 어둠 아래로 알알이 흩어졌다
달빛에 부서지는 기억, 기억들
저만치 연착되는 안부대신
종종걸음으로 도착한 꽃샘추위를 맞이하자
때로 잊고, 그보다 더 자주 기억하며


<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이다. 개운찮은 날씨 탓인지 세상사도 왠지 모르게 뒤숭숭하다. 곧 있을 국회의원 선거에 추위가 가세한 느낌이다. ‘깊어지는 것으로 말하는 그늘진 얼굴’이 서로를 보고 있다고 해야 할까. 4월이 들어서야 따사로운 바람이 불어 올 것인지… 3월이 되었다고 좋아라고 화분을 밖으로 내놓은 게 화근인지 안에서 잘 자란 화초들이 모두 얼고 말았다. 마음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구슬 같은 눈물이라고 부르지 말자’고 다짐한다.

밤과 낮을 똑같이 ‘나누는 일’이었던 춘분은 이미 지나갔고 이제 청명을 기다리며 마음을 추스린다. 맑고 환한 날이 오기를 기다려 본다. <박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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