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본격적인 겨울로 접어들었다. 매서운 바람이 살갗을 벨 정도로 추운 겨울이 닥쳐오고 있다. 부자들은 끼니 걱정, 난방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가난하고 병든 노약자들은 추운 겨울이 마냥 두렵다.

지금 복지예산을 증액하면서 가난하고 병든 노약자, 소년소녀 가장들을 돕고 있다. 그러나 매년 이맘때쯤이면 추위에 못 이겨 동사하거나 생활고에 시달린 나머지 자살을 하는 슬픈 소식이 들려온다.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어두운 사각지대가 놓여있다. 각종의 자원봉사 단체나 시민단체들, 교회, 사찰, 성당 등에서 힘없는 약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돕고 있다. 이들에게 정말로 고마운 마음을 전달하고 싶다. 그러나 이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도 있을 것이다.

이런 가운데도 굶주려서 죽어가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종교단체들은 이제 대형화되어서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교회의 사회적인 책무는 힘없고 가난한 자들을 먼저 돕는 것이다.

예수는 그것부터 제일 먼저 실천하였다. 이것은 종교의 평범한 진리이다. 종교인들은 자기들 종파끼리 모여서 얽히고설켜서 살아가지나 않는지 되돌아 볼 일이다. 어느 철학자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존재를 먼저 강조하는 유물론적 발상이 아니라 생각을 먼저 강조하는 관념론적 발상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다. 인간은 생각하기 때문에 동물과 구별되고 존엄한 인격체인 것이다.

이 존엄한 인격체가 굶주림과 추위에 죽어간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연초가 되면서 각종의 모임이 빈번하다. 신년인사회, 동창회 모임, 산악회 모임 친목회 모임 등이 많을 것이다.

이러한 모임에 참석하면 항상 술과 푸짐한 안주가 마련되기 십상이다. 우리는 이것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여긴다. 물론 그렇게 여기는 것을 나쁘다거나 나무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한번쯤은 힘없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하여 생각하면서 술과 음식을 드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술자릴 많이 자제하고 좋은 일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이 많은 돈을 기부하여야 빛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서민들이 십시일반으로 우리이웃의 사랑을 베풀 때 그것이 더욱더 의미 있는 일이다. 돈이 많으면 누구나 마음먹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좋은 일을 할 수 있다.

나는 돈이 없다고 좋은 일을 할 수 없다고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재능 기부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문제는 자신의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것이다. 추운 날 공원에서 힘없이 앉아 있는 노인들이 없는지. 소년소녀 가장들이 집에서 끼니 걱정하면서 떨고 있지는 않는지 세심하게 살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 온다고 할지라도 인간의 따뜻한 정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서양의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아프리카의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들을 돌보려고 죽음을 불사한다. 우리나라의 의사와 간호사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소리는 아직 들은바 없다.

그들도 목숨은 아까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죽음을 무릎 쓰고 힘없는 병약한 환자들을 돕는 이유는 딱 한 가지 이유뿐이다. 그것은 바로 생명의 존엄함이다.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것은 존엄한 것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인간의 생명이야 말로 가장 존엄한 인격체다.

추운 겨울이 닥쳐왔다고 해서 존엄한 인격체인 인간의 생명이 덧없이 사라져 가서야 되겠는가? 이것은 누구의 책임문제가 아니다. 정부를 비롯한 우리 국민들 모두의 책임인 것이다.지금이야 말로 정부는 정부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힘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추위로 죽어가고 있지나 않은지 각별한 관심과 대처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가난은 국가도 못 말린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옛말에 지나지 않는다. 가난은 구제될 수 있고 인간의 힘으로 극복 할 수 있다. 우리 모두 추위에 떨면서 굶주리거나 힘없는 약자들이 죽어가고 있지 않은지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 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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