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境의 아침>
장엄莊嚴
-박영근
저기 저 단풍 드는 지리산 보아라
법문이랄 게 무어 있겠나
노스님 입적入寂하시고
비로소 제 색色 찾은 거라네
푸르른 심지에 가 닿으려고
확, 그어댄 흔적
누구에게나 있지
번번이 상처만 남기고
타오르지 못해도 노을은
얼마나 아름다우냐
나는 깨친 것이 없어
수미산 주인집에 머슴 살러 갈 거여*
머슴 살러 갈 거여
화엄사 앞마당이
야단법석野壇法席이다
* 도천 스님
-고영서 시집 『우는 화살』(애지,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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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 살고 있는 고영서 시인이 펴낸 1시집 『기린 울음』(삶이보이는창,2007) 과 2시집 『우는 화살』(애지,2014)의 시집 제목에는 ‘운다’라는 언사가 모두 들어가 있다. 그 울음의 진원(震源)은 아마도 80년 5월광주민중항쟁의 아픔과 슬픔일 것이다. 고영서의 시를 관통하는 큰 물줄기 하나가 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이다. 지난 주말 광주에서 가졌던 오월문학제 및 전국문학인대회에 학교 일정 때문에 참여하지 못한 게 여가 아쉬운 게 아니다. 시 「장엄莊嚴」에 등장하는 배우는 단풍 드는 지리산과 노을 그리고 도천(1910-2011) 스님이다. 주연(主演) 배우는 단연코 도천 스님이고 나머지 둘은 조연(助演)이다. 대둔산 태고사 주지, 화엄사 조실인 도천 스님은 102세로 입적할 때까지 절의 일에만 몰두하신 대표적인 사판승(事判僧)이다. 늘, 언제나 “나는 깨친 것이 없어/수미산 주인집에 머슴 살러 갈 거여”라고 하시던 도천 스님께서 딱 한 번 “화엄사 앞마당” 전체를 “야단법석”으로 만들고 큰 법문을 하셨다. 스님께서 새 길 떠나시면서, 화엄사 앞마당에서 지리산 단풍처럼 노을처럼 활활 타오르면서 말없이 남기신 그 법문(法問)이다. 장엄(莊嚴) 그 자체다.
-이종암(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