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대전은 인정이 후덕한 박용래 시인이 술을 마시는 도시이며 반도의 중요한 교통 중심지이기도 하다.

날마다 거나하게 술에 취해 눈물을 글썽이는 울보시인답게 하루도 눈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기에 흔히 세간에서 말하기를 울보시인 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술에 취해 울면서 흘리는 그의 눈물은 건성이 아닌 천진난만한 동심어린 정서가 농도 짙게 풍기고 있음을 그의 시를 읽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부족이 또 부족을 찾는 날의 피붙이들끼리 서로 정답게 옹기종기 모여 술을 마시고 석별의 정을 아쉬워 하는 자리야 말로 눈물이 바다를 이루기 십상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대구가 목월 시인의 이야기처럼 낭만적인 안개의 도시라면 박용래 시인이 술에 취해 오열하는 대전이야 말로 세기말적인 울음이 낭자한 애환 도시로 둔갑하고 말았다.

이 땅의 시인중에도 유독 울보에 속하는 그가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눈물을 글썽이며 우는 내면에는 아마도 단순한 객기가 아닌 인간성이 송두리째 말살된 수난의 시대에 대한 애절한 비애 때문인지도 모른다.

속칭 충남을 대표하는 향토시인이면서 한국 문단의 중추적인 전통 서정시인이 기도한 박용래는 지역의 후배 시인들에게 각광받는 시인으로 널리 적평이 나있다.

그런가 하면 그가 태어난 강경은 드넓은 호남평야가 끝없이 뻗어 있고 금강이 유유히 흐르는 작은 소읍에 불과한 유배지나 다름없었다.

그의 생애에 둘도 없는 고향인 강경은 결혼한 누이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과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기억의 원산지에 속하므로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돌변한 새로운 전기를 가져온다.

강경 상고 출신인 박용래 시인이 은행원이 적성에 맞지 않는 그 자리에 집착하기보다 김소운의 수필에 현혹됨은 당연한 일임은 물론이다.

박용래 시인의 문학 인생중에서도 가장 획기적인 변모와 행운은 다름 아닌 그에게 이상적인 직종에 속하는 교편생활과 현대문학을 통한 문단 데뷔와 더불어 천생연분을 만나 결혼을 함으로써 정착한다.

언제나 그의 우거는 문인들의 발길이 끊어질 줄 모르면서 몰려드는 충남 대전의 문인들이 운집하는 사랑방의 역할을 충실히 하게 된다.

연중 행사날이 아닌 평일에도 인적이 끊어지지 않는 박용래 시인의 우거에는 문단 원로 외에도 전국 경향각지에서 찾아드는 문인들의 발길이 분주한 편이며 누구나 대전에 가면 인정이 후덕한 그를 찾아간다.

언제나 문인들의 잔치가 벌어지는 축제날이면 사방에서 구름떼처럼 몰려드는 행인들의 발걸음이 문전성시를 이루게 되는데 되풀이를 마치고 돌아가는 동료와 선후배들을 향해 못내 석별의 정을 아쉬워하며 울보 시인답게 두손을 마주잡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한국의 대표적인 서정 시인이요 충청남도의 향토시인의 한 사람이기도 한 박용래 시인은 자연주의 정서에 근접한 순수 전통적 서정성에 천착한 삶과 죽음에 의한 허무의식의 미궁 속으로 침몰하고 만다.

우리 고유의 순수 서정성을 지향하면서 궁극적으로 문명 비평적 현대 사회의 모순된 세계를 추구함과 아울러 자연주의 이미지를 접목하므로서 시로 형상화시켰다.

일찍이 박용래 시인의 비극적 시세계의 급진적 성향은 언감생심 고향 누이의 초산으로 인한 사망과 더불어 일제시대의 강제징용 및 6.25동족상잔의 쓰라린 상처가 충격적인 동기라 하겠다.

시와 시인이 불가분의 일체감을 조성한다면 이 땅에서 박용래 시인이야말로 전대미문의 유일한 시인중의 한 사람일 것이다.

거리를 누비며 홀로 걸어가는 행동반경 내부에는 그의 시가 생동력을 발휘하며 거대한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그의 인생 여정의 종착지로 가름하게 되는 충남 대전시 오류동은 생애의 황금기를 보낸 거주지 이기도 하다. 거기 대전의 번화가의 어두운 뒤안길을 그는 술에 취해 어깨에 헐벗은 남루 한 짐을 짊어지고 하얗게 밤을 지새우며 홀로 휘적휘적 걸어가는 찰나적인 순간에도 텅빈 가을 걷이가 이미 끝난 들녘의 노란 배추포기를 정녕 보고 싶어 했다.

그런가 하면 일년 사계절 중에서도 소년적인 향수 때문에 종심어린 겨울을 가장 즐겨 했으며 무엇보다도 그의 마을을 송두리째 사로잡는 하늘에서 펄펄 내리는 손바닥만한 함박눈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것이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롱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저년눈) 전문

시인은 저녁때 오는 눈발이 호롱불 밑에 붐비고 조롱말 발꿈치 혹은 변두리 빈터를 찾아 골고루 붐비는 모양을 지켜보면서 지난날을 돌이켜 회상하면서 고향의 아름다운 향수를 홀로 달래본다.

여기 충남 대전시 오류동 149-12번지는 박용래 시인이 지천명의 나이로 타계하기 전까지 20여년 동안 기거했던 거주지로 현재는 공영주차장이 들어 서므로하여 빈 공간으로 송두리째 남아 있다.

생전에는 은사인 박두진 시인을 위시하여 박목월 시인과 더불어 여러 문화예술인들의 발길이 사흘이 멀게 드나들 정도로 이 곳이 명실공히 대전의 유명한 문화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착실히 하였다.

한국 문단사에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눈물의 울보시인 박용래야말로 세기적 종말의 시대를 단독자로 살다간 영원한 보헤미안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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