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설계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두 거장은 다름 아닌 김동리와 황순원으로 거명되며 저마다 불후의 명작을 통해 큰 족적을 남겼다.

그들 중에도 황순원은 1930년대에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타계할 때까지 무려 시와 단편소설은 말할 것도 없고 중장편을 합하여 자그만치 수백편도 훨씬 넘을 정도라 하겠다.

특히 ‘소나기’나 ‘목넘어 마을의 개’와 같은 작품은 농촌을 소재로 한 전원 목가적인 작품성이 주류를 이루면서 한편 소시민들의 생활고를 흥미진진하게 그려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선생의 소설 속에 전개되는 세계야 말로 다름 아닌 동족 촌락의 개짓는 삭막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일면 무속신앙의 세계에 배경을 두고 있는 김동리 문학과 상반된 황순원 소설의 진수는 어디까지나 순수 서정성에 근거를 둔 토속적인 민초들의 삶을 지향함이 다반사라 하겠다.

이런 경우는 생전에 동향의 죽마고우나 마찬가지였던 흑구 한세광과도 별반 다를 바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동해변이나 은둔 문학을 하면서 검은 갈매기로 불리워지던 한흑구 선생을 보고 늘상 만능 시인과 소설가와 수필가를 두루 망라하고 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황순원은 하절기가 돌아오면 빠짐없이 잊지 않고 연중 휴가차 포항에 내려와서 오랜만에 흑구를 만나 반갑게 정담을 나누며 술잔을 기울였다는 후일담을 전해들은 기억이 아직도 새롭기만 한 것은 오직 필자만의 부질없는 망상만은 아닐 것이다.

고향을 한 많은 북녘땅에 두고 있는 흑구 선생은 하절기만 돌아오면 평양냉면 타령을 늘어놓기 십상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진로 소주와 빈대떡을 식사대용으로 선호하기 때문에 곧 잘 전통재래 죽도시장 뒷골목에 자리한 평양 할머니가 경영하는 빈대떡 집으로 발길을 분주하게 돌리는 외에도 송도 해수욕장 입구의 단골인 실비식당으로 뻔질나게 내왕하였다.

그런 고객중에는 흑구와 호형호제하며 매우 우애가 돈독했던 미당선생에게도 주인은 변함없이 흑구와 동등하게 상석으로 모시기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당시 흑구 선생의 문하생이었던 필자는 술시중을 챙기는 충복으로 맡은 바 소임을 다하였고 그런 소문은 하루가 멀게 문단 일락으로 퍼져나가기 예사였으며 발없는 이야기가 천리를 간다는 속담은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하는 성 싶다.

이른 바 황순원 선생은 시인을 겸한 작가로서 월탄선생과 더불어 한국 문단사에 전대미문의 걸작을 남긴 위대한 작가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 당시 하얀 석도 건물을 자랑하며 한국의 옥스퍼드라고 불리워지던 경희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수많은 인재양성에 헌신했던 공과는 자타가 인정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지만 언감생신 선생이야말로 청빈도락의 정신을 지표로 삼은 문학인생으로 일관하였다.

그런가 하면 수도 서울의 하늘 아래 아침 태양이 눈부시게 밝아오면 어느새 삼삼오오 짝을 지은 청춘남녀 대학생들이 황급히 등굣길을 재촉하며 그들만의 생기발랄한 젊음을 유감없이 구가하였다. 그런 와중에도 시단의 거장인 조병화 선생은 검은 베레모에 마도로스 파이프를 물고 하오의 교정을 가로 질러가는 풍경은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생전에 어는 누구보다 서민적인 민초들과 동고동락했던 흑구 선생은 본명이 아닌 아호대로 절대 고독의 미궁에 갇힌 주벽 인생으로 일관하였다.

맨 처음 소설로 입문하여 시와 수필과 평론에도 치중하다가 종내는 수필문학의 일가를 이룬 선구자로 자리매김한 바도 있다. 때로는 황순원 선생을 지칭하기를 대 문호로 극찬하면서 철새처럼 남도를 찾아온 문우와 반갑게 술잔을 기울이며 해묵은 회포를 풀기도 하였다.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우리네 미풍양속에 부부란 일심동체라고 했는데 황순원 선생은 문통의 동갑내기 규수와 결혼하여 6.25동란 시절의 생활고를 극복하므로써 전화위복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한 부인의 내조야 말로 든든한 초석이 되었으며 출세작 ‘목넘어 마을의 개’를 통해 외가의 전경을 인상깊게 그려 내는 한편 연달아 ‘소나기’를 탈고하여 왕성한 창작욕을 과시하였다.

또한 1.4후퇴로 인한 부산 피난시절에는 온갖 우여곡절을 격는가 하면 전시중의 임시교사로 종사하면서 김동리 김말봉 손소희 여사 등의 문인들과 교분을 나누었다.

금세기의 미래를 새삼 저울질 할 나위도 없이 혹자들은 현대를 서정이 죽은 정서빈곤 시대임을 개탄한 지가 이미 오래며 신서정 시대의 도래야 말로 예측 불허로 요원할 뿐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미루어 볼 때 우리들의 허기진 영혼을 살찌워 주는 문학이야 말로 기사회생의 활기찬 생명수에 비길 것이다.

한국 현대 문학사의 거목으로 우뚝 선 황순원 선생은 우리 소설계의 대부로서 김동리 선생과 더불어 쌍벽을 이루며 큰 족적을 남긴 바 있다.

강원도 양평군 서종면 수능리에 새롭게 건립된 황순원 문학촌의 소나기 마을은 선생이 작고한 이후에 문하의 제자와 재직하던 동료교수 일행들에 의해 위대한 문학정신을 영원히 기림과 아울러 몸소 체험하는 공간임을 한 눈에 읽게 해준다.

생전에 선생이 출간한 소설 소나기의 무대인 양평군과 교수로 재직했던 경희대학교가 공동으로 추진해 왔으며 소설무대의 현장을 전형적인 농촌 부락다운 양평군 서종면 수능리로 선정하였다.

이를테면 마을 입구에 조성된 황순원 문학관에는 선생의 생애를 상징하는 유품과 작품을 직접 관람할 수 있는 전시실과 집필실 외에도 야외 문학 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마련하여 소설 속 무대의 분위기를 더욱 실감나게 살려내는 반면 여기에 발맞추어 목넘어 마을의 개와 카인의 후예등을 포함한 각종 전시작품을 아주 다양하게 배열하여 영상을 통해 이곳을 내방하는 전국의 관람객들이 황홀한 신비경에 몰입하므로서 몸소 체험하게 된다.

특히 시인부락과 문학촌이 그다지 흔치않은 요즘 세태에 걸맞게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명소로 강연과 공연을 연중행사의 하나로 실시하고 있다.

이른바 한국 문단에 유래없이 하마평에 오른 황순원의 소나기는 단편 소설의 금자탑을 이룩한 불멸의 걸작으로 후세에 영구히 전해질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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