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境의 아침

-고운기

2004년 6월 27일이었다

전북 고창군 미소사 요사채의 처마에

새끼 네 마리를 낳은 제비 부부와 만났다

밤이었다

일본의 옛 노래를 공부한 선생이

나지막이 불렀다

서기 6세기 귀족의 노래

-그대가 떠난 궁정에

그대의 옷자락 휘날리던 바람만 남았네*

제비 부부는

새끼들에게 둥지를 내준 채 처마 밑 전깃줄에 앉아 자는데

머리는 둥지를 향하고 있었다

궁정을 떠나듯

중지를 버리리라

전깃줄만 남을 것이다

-고운기 시집『자전거 타고 노래 부르기』(랜덤하우스코리아,2008)

------------------------------------------------------

우리나라 민족문화의 보고(寶庫)인『삼국유사』연구자이기도 한 고운기 시인의 네 번째 시집『자전거 타고 노래 부르기』를 다시 읽는다. 몇 해 전, 그가 펴낸 저서『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현암사,2006)를 읽고 오래 황홀경에 붙들려 있던 기억 때문에 지난여름 그가 보내준 시집을 단숨에 두 번이나 읽었다. 다시 읽어도 깊고 폭넓은 생의 그늘을 머금고 있는 그의 시들이 참 좋다. 시「제비」도 또한 ‘부재(不在)’ 혹은 ‘떠남’을 처음부터 껴안고 있는 우리네 삶의 비의(悲儀)를 서늘한 그늘의 빛으로 웅숭깊게 그려내고 있다. 일상의 구체적 경험인 “새끼 네 마리를 낳은 제비 부부”를 만난 일과 “그대 떠난 궁정에/그대의 옷자락 휘날리던 바람만 남았네”라는 6세기 일본의 고대가요라는 서로 다른 두 이야기를 하나의 내용으로 엮어내는 솜씨가 일품(一品)이다. 모든 생명의 존재들이 가질 수밖에 없는 떠남(이별)의 아픔을 진중한 가락으로 잘도 노래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이 시의 이야기를 처음과 끝에서 떠받치고 있는 시의 첫 행과 마지막 행의 저 언표도, 또 제비도 이 노래를 부르는 시인도 언젠가 헤아릴 수 없는 부재의 깊은 그물 속으로 사라질 테다. 무섭다, 시간이여! 서럽다, 생명이여! 그러니 한계적 존재인 우리는 어떤 삶의 빛을 만들어야 하는가?

-이종암(시인)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