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境의 아침]박진형

몸이 마음을 버릴 때
베란다에 내어놓은 두메양귀비 핀다
연노랑 꽃등이 나를 가만 흔들다가
천구백사십년의 리화듕션에게 데려간다

모시나비는 거미줄에 날개 찢긴 채 울고 있다
복각판에서 찍찍 풀려 나오는
저 소리는 羽化다

소리로 세상을 촘촘히 읽다니
두메양귀비 곁에서 소리와 몸바꾼
그대 빈몸 껴안고 울며 지샌 밤이 있다
그런 밤에는 내 마음 한 가닥
팽팽하게 잡아당겨
청둥오리떼 날아간다

청둥오리 가는 길
몸이 마음을 버리고 登仙하는
저 소릿길






-박진형 시선집『길은 헐렁한 자루같다』(만인사,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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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풀밭, 구름과 어머니, 화가와 포퍼먼스를 좋아하는 그리고 새가 되고 싶어하는, 난(蘭)을 좋아하는 대구의 박진형 시인. 그가 지난 2014년 갑년(甲年)에 시선집 『길은 헐렁한 자루같다』를 상재했다. 시선집은 1시집『몸나무의 추억』에서 16편, 2시집『풀밭의 담론』에서 16편, 3시집『너를 숨쉰다』에서 14편, 4시집『포퍼먼스』에서 18편 등 모두 64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달은 가장 오래된 TV”, “TV는 허공의 찢긴 거미줄”, “길은 헐렁한 자루같다” 그리고 “사물의 어머니인 배꼽” 등의 탁월한 비유가 산재한 박진형의 시선집에서 독자 여러분께 어떤 시를 소개해야할지 한참이나 망설였다. 각 시집들의 표제시가 그의 대표시가 되겠지만 필자는 위 시선집에서 「소릿길」「몸經인 너」「무엽란」에 오래 주목하였다. 인용한 「소릿길」은 일제강점기 판소리 명창이었지만 1943년 오사게 군수기지로 가는 연락선에서 투신자살한 불우한 예인 이화중선(李花中仙)의 삶과 “거미줄에 날개 찢긴 채 울고 있”는 모시나비의 삶을 등치시켜 “몸이 마음을 버릴 때” 빚어지는 생의 마지막 소리, 그 소릿길에 대한 헌사(獻詞)다. 도저한 낭만주의 작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위 시에서 말하는 “몸이 마음을 버리”며 이뤄내는 우화등선(羽化登仙)은 예술가라면 누구나 꿈꾸는 삶의 궁극적 목적이겠다. 그런데 모시나비 울음소리를 시인은 어떻게 들었을까?
-이종암(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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