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허경태·취재국장

대한민국이 식민 지배의 수탈로부터 해방된 지 70년이 넘어섰다. 일제의 가렴주구로 엉망이었던 나라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민족 간 전쟁을 치르며 최소한의 생존 기반마저 잃어버린 지경에서 70여 년이 지난 지금 당당히 국가의 면모를 세계에 내세울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하였다. 그간에는 수많은 희생과 고통이 뒤따랐다. 그렇지만 식민 지배를 경험한 ‘비주류’ 국가로서 우리나라의 성장은 유례를 찾기 힘들만큼 대단한 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해방 후 국가 건설과 발전의 과정에서 당장 화급한 목적 때문에 용인 또는 강요되었던 것들이 많았다. 국가 건설이라는 명목으로 해방 이전 일제에 봉사했던 사람들이 해방 이후에도 영향력을 유지하면서 행세한 것이나, 남북 분단과 대치라는 현실과 경제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비민주적 권력이 민주 세력을 억압한 것이 그 대표적 사례다. 이런 역사적 굴곡이 우리 사회에 다양한 문제점을 잉태해왔고, 그로 인해 우리는 보다 강도 높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요즘 우리 국민들은 국가 지도자나 고위 공직자를 선정함에 있어서 도덕성이나 자질을 엄격히 따진다. 이런 경향은 위와 같이 간단치 않은 우리 역사와 무관치 않다.

흔히들 우리나라와 같이 신생 독립 국가에서 짧은 기간 안에 유망한 공업 국가로 성장한 경우를 ‘압축 성장’이라고 한다. 이는 서양 선진 국가가 적어도 백여 년 이상 걸쳐서 이룬 성과를 단지 몇 십 년 만에 이룬 것을 지칭한다. 그러나 몇 십 년이라는 시간은 개개인에게는 엄청난 시간이다. 압축 성장은 짧은 기간 동안 제도적으로나 의식면에서나 많은 변화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한 나라가 압축 성장을 했다는 것은 그만큼 이질적인 생각을 가진 세대와 사람들이 복합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몇 년 전 모 부처의 장관으로 임명된 사람이 이중 국적과 아들의 한국적 포기로 말이 많았다. 어떤 사람들은 단호하게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답답함을 토로한다. 그런 문제를 가진 사람은 마땅히 장관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런 문제는 변화된 현실에서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후자 쪽의 사람들은 세계화의 현실에서 낡은 근거로 공직 수행의 기회를 막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압축 성장을 하는 동안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잃고 살아왔다. 즉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고 공동체와 나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되어야 옳은지를 정하지 못한 채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 번 총리 임명 과정에서 문제시 되었던 것이 이중국적의 문제가 ‘장관 수준’에서는 얼버무려 진 것이다.

공직자에 대한 일반인의 생각은 이중적이다. 하나는 우리(국민)에 대한 종복이요, 다른 하나는 우리 위에 군림하는 자이다. 군림의 입장으로 보면 보다 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게 되고, 종복으로 보면 도덕성보다는 실용성을 보게 된다. 그러나 공직자는 이러 두 가지 면을 모두 지니고 있기 때문에 딱히 무어라 결정하기 어렵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공직자는 국민의 종복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일차적으로 공직자는 국민의 종복으로서 실용성을 갖추면 된다. 이런 기준에서 공직자의 자질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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