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미 소리마당 국정국악원 원장

 

모든 일은 다 지나가기 마련이다. 숨이 막힐 듯 달려간 공연도 어느새 추억의 한 장면이 되었다. 올해는 유난히 공연단 인원이 많아서 컨트롤하기가 힘이 들었는데 막상 막이 오르니 6살 꼬맹이도 어쩜 그리도 폴짝 폴짝 음악에 맞추어 잘도 움직이던지, 마음이 하나로 뭉쳐져 나온 결과가 어떤지 실감케 하였고 전문인이 아닌 일반인이 최선을 다하는 무대도 진심이 통하면 감동이 전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야 가슴에서 눈물이 난다. 신명과 흥이 넘치는 무대였다. 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전공자와 일반인이 175명이나 함께 호흡을 맞추며 각기 다른 향기로 어우러진 이런 공연은 아마도 처음일 것이다. 프로그램이 20개를 넘어가는 대작이었다. 한 꼭지 한 꼭지가 모두 창작 작품이어서 새로운 도전의 시작이었다. 대단하고 사랑스런 우리제자님들, 스승을 믿고 전진하는 모습에 있는 힘을 다해서 마지막 순간까지 집중하며 흐트러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리허설 때만해도 쓰러질 것같이 힘이 없었는데 무대가 열리는 순간 힘이 솟기 시작했다. “흥. 망 .성 .쇠. 백인의 흥” 이라는 타이틀이 영상에 나올 때는 마치 하늘에서 힘을 불어넣어 주듯 무대에서 펄 펄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국정 식구들도 모두 일심이 되어 제각기 역할을 무난히 치러 냈다. 지금 생각해봐도 대단한 무대였고 경제난국으로 힘든 것들을 일순간 날려 보낸 문화예술의 힘을 느낄 수 있는 한판 큰 찬치였다.
공연이 끝나고 나니 모두들 짐을 챙기느라 무대 위가 혼잡해졌다. 리허설 때부터 시골에 계시는 시부모님께서 오셨다는 말씀은 들었지만 계속되는 진행에 눈코 뜰 새가 없어서 뵙지 못했는데 공연이 끝나고도 계속 밖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어느 정도 무대가 정리가 된 후 공연의상을 입은 채로 황급히 나가보니 편찮으신 시어머님은 링거 까지 맞고 겨우 거동을 하셨고 시아버님께서는 꽃다발을 들고 기다리고 계셨다. 얼마 전에 뵈었을 때보다 더 수축한 모습이었지만 환하게 웃으시면서 폭풍칭찬과 악수와 함께 꽃다발을 건네 주셨다. 꽃다발을 사시려고 여러 곳을 찾아서 힘들게 사오셨다고 나중에 남편에게 전해 들었다. 아버님 생전에 처음으로 사신 꽃다발을 며느리인 내가 처음으로 받은 것이다. 이 꽃다발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의미 있는 꽃다발을 품에 안고 나니 만 가지 스트레스가 다 풀리는 것 같았다. 그동안 일이 너무 바빠서 부모님도 남편도 아들도 잘 챙기지 못해 마음 한구석이 늘 아렸는데 시아버님의 꽃다발로 모든 것이 씻겨 내려가서 후련해졌다. 나만큼 시댁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딸만 내리 네 명을 낳고, 남편을 낳아 첫 손주를 처음 만나던 날, 어머님은 맨발로 나와 받아주셨다. 여태 단 한 번도 나무라는 것 없이 부족한 며느리를 감싸주고 아껴 주셨다.
시아버님은 지인 분 차를 타고 시골로 다시 내려가셨고, 시어머님은 식사를 잘 못하셔 그냥 국악원 작은 방으로 모시고 왔다. 소리마당 연습실 옆 작은 방은 여름에는 냉장고처럼 시원하고 겨울에는 보일러를 조금만 틀어도 찜질방처럼 쩔쩔 끓어 멋진 기와집도 부럽지 않을 만큼 좋다. 시어머님은 이틀 동한 갓난아기처럼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하시더니 오실 때 보다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바쁜 며느리 보셔서 대접도 못 받고 챙겨 드리지도 못하고 늘 죄송한 마음뿐이다.
국악원 작은방에 시어머니와 귀를 맞대고 누웠다. 어머님 귀가 어두워져서 바로 옆에 누우니 작은 소리로 말하기 좋다. ‘어머님 내년 공연에도 꼭 참석하셔요’ 어머님은 못 들으시는 척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 내년 이 맘 때가 화살같이 또 오리라.
2016년 흥. 망 .성 .쇠. 백인의 흥 175명 공연단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내년에는 더욱 성숙된 공연으로 만날 것을 약속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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