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재 대표이사

탈 원전 공백 신재생으로 대체하고, 경북정서와 탈 원전정책 신뢰성 차원에서 접근 필요


경북의 정서는 박근혜 정부의 실패, 분노, 상실감 등으로 복잡한 속내를 안고 있다. 정권교체에 따른 실망감, 경제적 박탈감, 정신적 상실감 등 혼돈 그 자체다.

이런 와중에서 불거진 탈 원전은 경북주민의 복잡한 속내에 기폭제가 되어 깊은 상실감을 안겨주고 있다. 원전산업 성공은 경북에서 일궈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주, 울진 등 경북도민의 협조와 희생은 한국원전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수 십 년 동안 유치지역을 정하지 못했던 방패장도 경주시민은 기꺼이 받아들였다. 영덕과 울진 주민은 격렬한 찬반 속에서도 천지원전과 울진의 신규 원전 건설에 동의해줬다. 만년 기피 시설로 간주돼 온 원전산업을 경북은 받아들인 것이다.

한수원은 이 덕분에 매년 수 조원의 순익을 내고, 우리나라의 산업근대화 발전의 근간이 됐다. 이 같은 역할을 해온 경북이 혼돈에 빠졌다. 새 정부 들어 탈 원전 정책이 현실화 되면서 경북은 깊은 시름에 빠졌다. 신규 원전 백지화로 투자비 2조원이 날아가고, 원전산업은 사양화에 들어섰다.

경북의 주요 먹거리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정권이 바뀌면서 하루아침에 많은 것이 변한 것이다. 허탈감은 말로 표현이 되지 않는다. 경제적 물질적 박탈감은 말할 것도 없지만 무엇보다도 정신적 상실감은 더 크다. 참을 수 없는 것은 이 같은 상황을 대책 없이 그저 지켜봐야 하는 처지다.

정부는 탈 원전 한다면서 아무런 보완대책을 수립해 주지 않고 있다. 한수원 역시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사태 등 탈 원전이라는, 창사 이래 최대 사건에 대비하느라 정신이 없다. 아무것도 되는 것도, 뭔가 될 수 있다는 기대조차도 없다.

대구, 경북 출신 장관과 여권 핵심인사들이 TK 달래기에 나서고 있지만 소리만 요란할 뿐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는 보이지 않는다. 박탈감과 깊은 상실감은 해소될 기미도 없고, 경북에 대한 배려와 보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것이 경북이 처한 냉엄한 현실이다.

경북도는 보완대책으로 원전해체산업이라도 유치해줄 것으로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정권을 잡은 PK에서 노리고 있어 녹록치 않다. 원전산업발전의 공로는 어디가고, 경북은 이제 위험한 산업을 다루는 지역으로 전락하여 오히려 청산대상이 되고 있다. 왠지 장물아비로 전락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아무런 보상이나 대책마련도 없이, 이제 필요 없으니 해체하라는 것에 대한 섭섭함,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고 있는 지역 정치권에 대한 원망도 함께 녹아있다.

한수원도 답답할 것이다. 그동안 막대한 순익으로 남기면서 승승장구 했는데, 이제 탈 원전이 현실화되면서 달라진 세상을 실감해야 하니까.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전전긍긍할 것이다. 당장 당면한 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사태 해결에도 정신이 없다. 이제는 정신을 가다듬고 하나하나 풀어나가야 한다.

경북정서 달래기에는 한수원이 먼저 나서야 한다. 정부도 보듬어야 하지만, 탈 원전 문제는 시대에 맞기고 경북지역에 대한 배려를 고민해야 한다. 경북지역에 대한 신재생에너지투자를 확대하는 방안은 적절한 대안이라 할 수 있다.

정부의 에너지정책에 호응하고, 한편으로는 경북지역에 집중 투자하여 날아간 2조원 자리에 신재생에너지를 자리매김 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이기 때문이다.

한수원의 신재생전력사업 투자계획은 7개 사업에 2267억원에 달하지만 경북지역 투자계획은 2건에 불과하고 이뤄진 것은 없다. 한수원 전체 전력 생산실적에서 신재생전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1%다. 탈 원전 공백을 신재생전력으로 대체하여 국가에너지 정책에 적극 호응하는 것이 경북에 대한 한수원의 책임과 역할이다.

사실 경북에는 배려, 보상이라는 따위의 말은 적합하지 않다.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한 것으로,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으면, 이런 말은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형평성에 맞는 적절한 조치가 경북의 자존감을 지켜주는 가장 적절한 처방이다.

정부정책에 적극 호응해 온 경북이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푸대접과 차별을 받는다면 국가장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정책에 불신이 쌓이고 누적되면 누가 정부정책에 호응할 것인가? 탈 원전정책과 경북정서는 국가정책에 대한 신뢰성 회복차원 측면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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