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석 포항시립교향악단 상임단원

나는 공포영화를 좋아한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공포영화가 주는 긴장감을 즐기는 것 같다. 이런 공포영화에 음악이 없다면? 정말 상상하기도 싫다. 놀랍게도 유명하고 재미있는 공포영화는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만 들어도 영화의 장면이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재생이된다. 왜일까? 곰곰이 살펴보니 클래식 악기, 즉 오케스트라의 음악으로 구성된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일수록 긴장감이 배가 된다. 오케스트라의 음악적 효과란 정말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인시디어스'란 영화에서 귀신이 등장하는 장면에 불협화음으로 갑자기 음악이 나오면 모두 심장을 부여잡고 깜짝 놀란다. 영화 '향수'에서 여자들을 죽여 채취를 향수로 만들 때 여자 성악가가 가사없이 부르는 노래는 보는 이들에게 섬뜩함을 준다.

누가 연주 했을까 궁금하여 찾아보니 베를린 필하모닉과 사이먼 래틀경이 연주한 영화음악이었다. 그래서인지 영화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렉 작곡가, 줄여서 영화음악 작곡가는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왔고, 높은 대중성과 예술성을 갖고 큰 인기를 얻어왔다. 일반적으로 영화음악은 영화와 동등한 위치를 가진다.

어쩔때는 영화는 흥행을 못해도 음악은 성공한 예도 있다. 비록 이런 영화를 위해 작곡되어지지는 않았지만 이와 동등한 위치를 갖는 음악이 있다. 바로 클래식 음악이다. 몇 백년에 걸쳐 작곡된 수많은 예술가들의 클래식 선율은 때로는 영화음악의 아성을 무너뜨리며 영화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곤 한다. 대표적으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이 사용되어 영화의 간판 이미지로 되었다. 지금도 수많은 영화들에서 클래식 음악을 사용하고 있다.

영화 속의 클래식을 떠올리며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란 영화를 소개 할까 한다. 이 영화는 폴란드의 유명한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라프 스필만의 실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실제 바르샤바에서 겪었던 힘든 생존의 이야기이다. 영화의 주제는 전쟁의 공포와 비극, 그리고 전쟁중 독일군이 지키지 않았던 인간성에 대해 이야기 한다.

스필만은 1977년 바이올리니스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바르샤바 음악원과 베를린 예술 아카데미에서 피아노와 작곡을 배웠고, 바르샤바에 돌아와서 피아니스트로 유명 했던 동시에 작곡가로서도 활발히 활동하였다. 영화속에서는 피아나스트로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작품을 남긴 작곡가이기도 했다. 폴란스키 감독도 유태계로 아우슈비츠에서 어머니를 잃고, 실제 끔찍한 유태인 학살 현장을 경험하였다.

또한 영화속 장소캐스팅 과정에서 전쟁 중 자신의 생존을 도와준 사람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마치 영화속에서 스필만이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는 장면과 동일한 상황이 발생했던 것이다. 때문에 영화 내내 사실감 넘치는 장면의 묘사가 압권이다. 영화는 스필만의 자서전을 원작으로 제작 되었으며, 자서전의 제목은 '도시의 죽음'이다.

당시 스필만이 생존해야 했던 바르샤바는 독일군에 의해 몰살당한 죽음의 도시였다. 잿더미 속에서 홀로 몸을 숨기며 도망치던 스필만은 은신처에서 독일군 장교에게 발각된다. 생사의 기로 앞에 독일군 장교가 스필만이 피아니스트였다는 말을 듣고 연주를 시킨다. 마지막일지 모르는 상황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연주를 하게 되고, 이에 크게 감동을 받은 독일군 장교는 스필만에게 은신처와 음식을 주고 떠난다. 이 독일군 장교의 이름은 빌름 호젠펠트로 독일이 전쟁에서 패한 후 스필만과는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영화속에서 흐르는 스필만의 테마 음악처럼 사용된 곡은 쇼팽의 '녹턴 c단조'이고, 스필만이 유대인 완장을 차고 바에서 치던 곡은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 이다. 스필만은 자서전에서 독일군 장교 앞에서 한 연주는 쇼팽의 '녹턴 c단조'라고 하였지만, 영화에서는 '쇼팽의 발르드 1번'을 연주한다.

영화를 보는내내 쇼팽의 주옥같은 음악은 즐겁다기 보대는 애잔함이 묻어 있다. 마지막 엔딩은 스필만이 일상으로 돌아와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며 마치는데,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한다. 자, 우리도 힘든 일상의 여정을 잠시 내려놓고 좋은 영화와 음악을 함께 해보는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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