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장

▲ 김문길 박사

   
▲ 조선과자 실물

   
▲ 조선엿 실물

   
▲ 가토 기요마사 그림

   
▲ 조선엿 공장

임진전쟁 때 왜(일본)는 조선에서 많은 것을 약탈해 갔다. 약탈품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과 문화(기술)이다.

필자는 1592년 발발한 임진전쟁에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왜장 가토 기요마사를 주목한다. 가토는 일본 구마모토 출신 왜장이다. 그는 1592년 임진년 왜의 선봉장으로 침략군을 이끌고 왔다.

정유재란 때인 1594~1596년 사이에는 경북 경주, 영천, 의성을 유린했다. 전쟁 막바지에는 울산에서 조명연합군과 치열한 전투로 벌였다.

그는 그때 싸움을 할 때 전병(煎餠, 찹쌀가루, 밀가루, 수수 가루 따위를 반죽하여 넓고 둥글게 하여 번철에 지진 떡. 센빼이)을 먹었다.

그 맛이 하도 좋아서 그는 조선의 음식 기술자 일본으로 잡아갔다. 그때부터 ‘조선 전병’이 일본의 유명한 과자류로 자리를 잡았다. 특히 어린이의 돌 때 쎈빼이를 먹도록 하는 관습이 아직도 내려오고 있다.

상품 속에는 갑옷을 입고 창을 든 장군의 그림이 나오는데 이가 가토 기요마사다. 일본 구마모토(熊本)시에 들어가면 시 입구에 이 그림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여기 나오는 창은 가토가 청송지역에서 호랑이를 잡았던 창이라고 한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창끝의 오른쪽 칼날이 끊어지고 없다. 그 이유는 가토가 호랑이를 잡을 때 호랑이가 창끝 하나를 물어 부러뜨렸다고 전한다.

가토 기요마사는 전병 말고도 조선엿을 즐기면서 싸웠다. 조선엿 또한 그때 일본으로 건너와 유서 깊은 일본 과자로 자리를 잡고 있다.

상품을 소개하는 글을 살펴보면, “가전에 전해온 명장(가토)의 엿이다...수백년된 엿공장인 원전옥(園田屋)에서 지금도 생산한다”고 적혀있다.

사진에는 熊本名産(구마모토 유명제품) 원조 조선엿 공장이라며, 창업 400년째(天正年間, 1573~1593년) 내려온 공장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필자는 한일문화연구에 평생을 바치면서 임진전쟁(임진왜란)이 일본에 미친 영향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이 가운데 잡혀 온 조선인들이 일본에 뿌리를 내려 살면서 일본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확인했다.

과거를 과거로 덮어둬서는 의미가 없다. 그때의 일들이 현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미래에는 어떻게 흘러갈지를 연구하는 것은 한일 양국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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