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재)대동문화재연구원이 4월부터 진행하고 있는 고령 봉화산의 봉수대 재현사업부지를 발굴조사 과정에서 조선시대 봉수시설 외에도 대가야의 산성이 발견되었다,
이 일대는 대가야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신라와 대치하던 최접경지이자 관문을 지키는 전략적 요충지로 일찍부터 학계에서 주목해왔던 곳이었다. 이 관문성의 축조형태는 대가야 궁성의 대피성인 주산성과 동일한 테뫼식 석축성이며, 군사들이 먹을 물을 보관하던 원형의 석축 저수시설도 확인되었다.
그 결과, 여러 고문헌에 표기된 조선시대 제2봉수로의 간봉(6)이며, 가덕도 천성보에서 칠곡 각산봉수 사이 10번째에 해당하는 말응덕산(末應德山) 봉수의 연조와 물품을 보관하던 건물지가 확인됐다.
봉수시설에 대한 정밀발굴조사를 한 결과 중심시설인 방화벽·연조자리(3)·건물지(1)와 주변시설인 방호벽·건물지(1)가 밝혀졌다. 이와 더불어 봉수시설이 구축되기 훨씬 이전에 조성된 대가야 시대로 판단되는 석축산성의 성벽과 원형 저수시설의 흔적도 확인됐다.
봉화산성에 대한 발굴조사결과, 돌을 쌓아 축조한 산성은 대가야 시대인 6세기 무렵에 처음 축조된 것으로 파악되었다. 산성의 축조방법은 대가야 왕도의 배후에 자리하며 대가야 석축산성으로 밝혀진 주산성의 축조방법과 동일한 기술이 적용된 것을 확인했다.
한편, 축조시기를 판단할 수 있는 산성의 기초부에 해당되는 성벽 하단 외부의 정지면 점토층 내부에는 다수의 토기편들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기종은 발형기대·장경호·고배뚜껑·호·연질호·장동옹 등으로 전형적인 대가야 토기편으로 확인됐다.
기초부에서 출토된 유물, 성벽의 축조방법, 산성의 배치양상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봉화산성은 대가야시대에 축조된 석축산성으로 전문가들은 판단했다.
이번 봉화산성 발굴조사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기존의 고분 중심으로 진행되던 대가야사 연구 한계를 극복하고 산성을 중심으로 한 대가야의 관방체계 연구의 토대를 마련함과 동시에 신라와 대치하던 당시의 정세와 더불어 대가야의 영역, 교류, 번성과 쇠락 등 다양한 시각과 관점으로 연구 범위를 확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지금까지 대가야 성곽으로 밝혀진 사례는 대가야 궁성과 대피성인 주산성이 전부이며 아직 그 연구성과가 미미한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사를 통해 대가야의 국경에 설치된 석축산성의 실체가 처음으로 드러남으로써 향후 대가야궁성을 둘러싸고 주변지역에 배치되어 있는 17개소의 성곽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