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가 늦다는 말은 종종 듣는데 저는 결코 후회하진 않아요.”
배우 이동휘는 지난해 개봉한 영화 ‘남쪽으로 튀어’로 데뷔한 신인이다. 10대, 20대 초반에 데뷔하는 다른 배우들에 비하면 그는 29세라는 다소 늦은 나이였다. 그러나 이동휘는 데뷔가 늦은 것에 불안한 기색이 없어 보였다. 뒤늦게 배우의 길로 발을 들여 놓은 만큼 남다른 열정과 마음가짐으로 매사에 임하고 있다.
“저 자신에게 ‘어떤 역할을 맡았을 때 잘할 수 있겠냐’고 물었는데 잘하지 못 할 것 같다는 대답을 했었어요. 연기라는 건 어린아이들이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쓰듯이 연기하는 게 아니거든요. 대중들에게 보여질 때 저 스스로라도 조금이나마 떳떳함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란 마음이 있어서 공부하려고 했어요.”
이동휘는 상업 영화에 데뷔하기 이전에 대학교에서 학생들이 만든 작품에 주로 출연했다. 학교 작품을 하면서라도 카메라 앞에 서봐야 상업 영화에서도 어색함 없이 연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예상은 어느 정도 적중했다. 이동휘는 학교에서의 경험이 현장에서 주눅이 들지 않는 원동력이 됐다고 한다. 또 그는 영화도 수없이 봤다. 이동휘는 그만큼 준비된 인재였다.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에 데뷔한 건 아니에요. 지금도 아니고요. 예술은 대중들을 위한 거고, 관객이 있어야 배우가 있는 건데 혼자 꽁꽁 싸매고 저만 만족하는 건 좋은 아티스트가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과연 제 모습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평가받고, 제가 어떤 선물을 대중에 드릴 수 있을까란 생각에 두드려 본 거예요. 그런데 그 모습을 예쁘게 봐주신 감독님들 덕분에 작품을 하게 됐죠.”
노력 덕분일까. 이동휘는 올해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최근 종영한 KBS2 드라마 ‘조선총잡이’에서 박윤강(이준기 분)의 조력자 한정훈로 등장한 것은 물론 영화 ‘타짜-신의 손’(이하 타짜2)에서 최승현과 호흡을 맞췄다. 1등 드라마와 영화에 모두 이름을 올린 셈이다.
“굉장히 경이로운 경험인 것 같아요. ‘조선총잡이’는 시청률 1위였고, ‘타짜2’는 ‘명량’ 같은 큰 돌풍은 아니지만 청소년관람불가로서 3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등 흥행을 해서 당황스럽기도 했어요. 제가 그런 작품에 속한 게 어리둥절해요. 그런데 어떤 작품에 출연하든 마음은 항상 똑같아요. 영화를 통해 팔자를 고치자는 생각은 전혀 없어서 그런 면에선 흥행작에 나온 것이 무덤덤해요. 다만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는 작품에 나왔다는 거 자체가 신기해요.”
이동휘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영화로 팔자를 고치려는 생각은 없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그는 인생역전을 위해서가 아닌 그저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저는 기회를 쟁취하기 위해 욕심을 부리고 싶지 않아요. 그건 영화에 대한 예의가 아니거든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이동휘라는 배우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은 없을 거예요. 제가 극 중에서 실제 그 직업을 가진 사람처럼 연기하면 관객들이 알아봐주실 거라 믿어요.”
그의 생각이 이번에 조금은 통했을까. 이동휘는 ‘타짜2’에서 맡은 쩌리 역할을 좋아해 주는 관객이 꽤 많았다고 털어놨다. 이동휘에게 있어서 ‘타짜2’ 출연은 일종의 신의 한 수였던 셈이다. 사실 그는 짜리로 낙점되기까지 수많은 경쟁을 뚫어야 했다. 감독에 의하면 쩌리 역할 오디션을 위해 700명에 육박하는 지원자가 몰렸다. 짜리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충무로의 숨은 인재들이 대거 참여했다.
“저도 정말 하고 싶었던 역할이었어요. 그런데 키가 140cm도 채 안 되는 짜리몽땅한 짜리와 달리 저는 키가 그렇게 작지 않아서 걱정이 많았어요. 대신 모든 걸 내려놓고 제 내면에 있는 찌질함을 많이 보여 드렸어요. 유흥가에 있는 사람들을 주로 관찰했는데 속물 같은 사람을 온전히 제 모습으로 표현하면 감독님이 알아봐 주실 거라 믿었는데 기적처럼 그걸 봐주셨어요. 운이 좋았죠.”
이동휘는 원하던 배역을 맡게 된 만큼 짜리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극 초반, 대길(최승현 분)이를 꼬장하우스로 끌어들이는 중요한 역할을 맡은 그는 그 어느 때보다 비열하고 찌질한 사람이 됐다. 이동휘는 실제 성격인지, 연기인지 분간이 어려울 만큼 영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짜리는 중요한 역할이었어요. 물론 저는 분량과 역할을 떠나 함께 작업하고 싶었던 감독님의 영화에 출연한 것만으로도 희열이 있었어요. 그런데 함께 연기한 최승현군의 양보 덕분에 짜리의 분량이 더 많아졌어요. 함께 연기하면서 정말 도움을 많이 받았죠. 매 순간 행복하고 즐거웠어요. 신세경양과 최승현군이 저한테 용기를 북돋아주고, 응원을 많이 해줬죠. 고맙더라고요.”
이동휘는 ‘타짜2’에서 감초 역할을 했다는 말에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그는 겸손한 말투로 짜리가 주목을 받은 것을 다른 배우들의 공으로 돌렸다.
“다른 선배님들이 역할에 맞게 정확한 연기를 해주셔서 제가 돋보일 수 있던 것 같아요. 모든 선배님들이 오버페이스로 연기했다면 저도 실력이 드러나서 빛을 못 봤겠죠. 그런데 선배님들이 적당한 포지션에서 적절한 연기로 든든하게 받쳐주신 덕에 저 같은 신인이 감히 감초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선배들께 감사해요.”
이동휘는 ‘조선총잡이’와 ‘타짜2’에서도 그랬지만 매번 다른 역할, 다른 연기를 선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자신의 연기 변신을 명절 선물 세트에 비유하기도 했다. “매년 관객분들에게 풍성한 선물을 드리고 싶어요. 선물은 주는 사람이 행복한 만큼 매년 그 선물이 무엇이 될지 들키고 싶지 않아요. 그런 측면에서는 욕심이 있죠.”
이동휘는 오는 11월 개봉하는 영화 ‘패션왕’을 시작으로 ‘도리화가’, ‘베테랑’의 개봉을 줄줄이 앞두고 있다. 그는 다수의 작품에 연이어 출연하지만 매번 색다른 모습을 선보일 예정이다.
“제가 ‘패션왕’에서 맡은 역할은 원작 만화에는 없는 캐릭터인데 다른 작품과는 다르게 연기하려고 했어요. 이전 배역들은 떠오르지 않으실 거예요. 지금 촬영 중인 ‘도리화가’도 마찬가지예요. 충격적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특수 분장에 버금가는 비주얼에 공을 많이 들였거든요.”
그는 누구보다 진지하고 겸손하면서도 유쾌한 배우였다. 거들먹거리고 한심한 쩌리는 온데간데 없었다. 이동휘는 ‘타짜2’에서 친한 동생인 대길이를 배신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지인들, 동료 배우를 살뜰히 챙겼다. 이동휘는 인터뷰를 마칠 무렵, 동료 배우들에게 응원의 한마디를 건네기도 했다.
“박형수, 이수광, 민진웅, 신주환, 임윤호 파이팅”
- 기자명 대경일보
- 입력 2014.10.01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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