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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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칠구 포항시의회 의장
‘반중 조홍감이 고아도 보이나다. 유자 아니라도 품음 직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을세 글로 설워하나이다.’ 박인로의 ‘조홍시가’가 절로 읊어지는 계절이다. 선친께서 유별히 즐겨 하셨던 홍시를 보면 절로 선친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릴 적 아버지는 한없이 큰 존재였다. 무슨 일이라도 해낼 것 같은 영웅 같았다. 아버지의 손은 왜 그리 커 보였는지, 등은 왜 그렇게 넓어 보였는지, 아버지만 있으면 든든했다. 하지만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을수록 아버지의 존재감이 서서히 작아졌다. 아버지의 생각을 강요하는 모습에 세대 차이도 느끼게 되었고, 어느 순간에는 내가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은 착각도 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나이가 들수록 그리고 곤경에 처하게 되거나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될 때면, 그때 그 아버지의 잔소리라 생각했던 조언들이 듣고 싶어진다. ‘아버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자문을 구하고도 싶고, 아버지께 드리고 싶은 말씀도 많지만 이젠 더 이상 여쭐 수 가 없음에 마음이 아리다.
부전자전이라 하였던가. 필자는 아버지와 많이 닮았다. 성격이면 성격, 외모면 외모,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나서야 하고, 해야 할 일을 두고 미루지 못하는 성격과 이 나이 먹도록 새치염색 한번 하지 않았고, 치아에 충치하나 없다. 아버지께서 꼭 그러하셨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지 4년쯤 돼간다. 1남 4녀의 외아들로 태어났기에 그 어렵던 시절에도 내 밥상에는 흰쌀밥 한 번 끊이지 않을 만큼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지만, 평소 ‘아들은 강하게 키워야한다’ 하시면서 아버지께서는 웃음 한번 주시지 않고 불호령만 내리셨다. 그 큰 뜻이야 어찌 모르겠는가. 꾸지람이 그립다. 늘 곁에 계실 것만 같았기에 빈자리가 더욱 크다.
얼마 전 ‘노인의 날’을 맞아 어르신들의 발을 닦아드리는 세족식이 있었다. 필자도 동네 어르신의 발을 정성껏 닦아드렸다. 어느 순간 코끝이 찡해왔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10여 년을 아버지를 모시고 신광에 있는 온천에 매주 들러 등을 밀어 드리곤 했던 기억이 나서다. 그 넓던 등이 자꾸만 야위어 뼈만 남아가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던 적도 있었다.
어디 하나 아버지의 그늘이 없는 곳이 있겠는가마는, 2006년 처음으로 시의원 출사표를 던졌을 때 그 빛이 발했던 것 같다. 주변에서 효자라 하시며 격려해주셨던 것이 많은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요즘은 문득문득 거울에서 아버지의 모습이 겹치곤 한다. 아버지가 더욱 생각나는 이 계절, 오늘은 집에 들어갈 때 홍시 한 봉지 사들고 가야겠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홍시를 먹으면서 가족이 둘러 앉아 아버지 얘기를 실컷 하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