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 김상조 부사장겸 편집국장
최근 포항 인근 모 대학 언론홍보 관련학과 모 교수로부터 학생들을 위한 특강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때마침 지방선거철이라 ‘지방선거와 지역언론의 역할’이 그 주제였다. 데스크를 지키는 바쁜 몸인지라 철저해야 할 강의준비는 사실 대충하고 말았다. 그러나 미래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켜나갈 학생들이기에 목차 중 지방선거는 심혈을 기울였다. 지방의회의 태동기에서 출발해 4년마다 치러진 지방선거와 지방언론의 선거보도에 초점을 맞췄다. 강의는 다양한 현장취재 경험을 살려 학생들이 혹 흥미를 잃을까봐 노심초사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곁들여 출발했다. 아마 1시간 20분여간 나름대로 목청을 돋운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중언부언이 많아져 전반적으로 충실하지 못했다. 그러나 4년마다 치러진 지방선거 취재경험은 빠트리지 않고 채운 걸로 기억된다. 주어진 시간은 금방 흘렀고 질의답변 시간이 됐다. 놀라운 사태는 이 때 벌어졌다. 폐부를 찌르는 감동스런 질문들이 잇따라 쏟아진 것이다. 그중 맨 앞줄 강단에서 바라보아 왼쪽에 앉아 있던 자그마한 남학생이 던진 질문은 지금도 기억에 뚜렷하다. “혹시 기자 생활을 하시는 동안 취재활동에 ‘외압’을 받으신 적은 없으신지요? 받았다면 어떻게 대처했는지 궁금한데요?” 앞이 캄캄하고 선뜻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가뜩이나 힘이 빠진 어깨를 들썩이고 호흡을 가다듬어 보아도 답변여력은 없었다. 그 순간 지난 26년간의 기자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래 사실 많은 외압이 있었다. 정치권력은 물론이고 선후배, 친구, 지인, 향인, 심지어 가족, 친인척까지 전 방위 외압을 가하는 저편에 서 있었다. ‘무관의 제왕’을 자처하고도 제대로 기사를 못 썼던 자신은 또 얼마나 미웠던가? 분통을 터뜨리며 담배를 태우고 술잔을 기울이던 날들은 벌써 저만치 흘러갔다. 그러고 보니 외압이란 단어도 잊은 지 이미 오래됐다. 그저 그렇게 가족을 위해 월급을 받고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흘러 보냈던 순간만이 떠오른다. 그날 당찬 눈빛의 그 학생이 던진 질문이야말로 오늘날 젊은이들이 기성세대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그 반면 내뱉은 답변은 수험생이 답안지를 그럭저럭 메울 때 쓴 하찮은 답안처럼 씁쓸하게 느껴졌다. “그 때는 그저 슬기롭게 넘어가야 합니다 그저... 우리는 그렇게밖에 못 했습니다 ”라는. 결코 정답이 아니었다. 얼버무린 답변이 아닐 수 없다. 조금이라도 빨리 강의실 문을 뒤로하고 뺑소니 치고 싶은 심경이었다. 사실 지방언론은 지방선거를 치를 때마다 춤을 춘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객관적인 보도를 아무리 강조해도 지면에서 찾아볼 수 없다. 대개가 편파적이다. 아예 여론조사를 빙자해 편집에서 특정후보의 사진과 기사를 맨위에 두는 상황도 비일비재하다. 바깥 출입처에서 강하던 기자들도 소속사에 귀사하면 늘 ‘그러려니’ 하는 외면과 포기로 일관한다. 외압뿐만 아니라 사내 상층부에 대한 눈치 보기가 희한한 관례를 생산해놓은 것이다. 지방선거 취재현장은 늘 그래왔다. 그런 일들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여겨왔다. 지방언론의 현실이 각박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그래서인지 강의 후 담당교수의 “아주 잘 하시던데요”라는 칭찬은 부끄럽기만 했다. 학생들의 박수소리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세월호 참사 후 정관계 할 것 없이 온 나라가 비리와 유착으로 썩었다고 한다. 작금의 지방언론도 결코 예외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상아탑은 그래도 달랐다. 여전히 맑고 깨끗한 학생들은 언론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외압을 받지 말라는 은근한 질타를 되새기던 그 날 국가와 민족의 미래가 결코 어둡지만은 않으리라는 확신이 더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