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부는 지난 해 여름부터 짬이 날 때마다 외양간에 깔아둔 짚과 쇠똥과 잡풀을 섞어 봄까지 묵혀둔다. 초봄에 언 땅이 녹아 푸석 푸석해지면 구수한 거름냄새가 나는 봉분만한 두엄에서 거름을 실어와 마른 논에 뿌려둔다. 겨울 내내 잘 먹여 살이 찐 소를 몰고 논으로 나가 쟁기를 걸고 소고삐를 잡고 땅을 깊이 간다. 그리고 물을 잡아 어린모가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곱게 써래질을 해둔다.
그리고 논에 물이 새거나 둑이 무너지지 않도록 찰진 흙으로 논둑을 두껍고 매끄럽게 발라서 논두렁을 해두고 모내기를 준비한다.
아이들이 학교에 갔다 오는 길에 지름길 삼아 금방 해서 미처 다 마르지 않은 논두렁을 밟았다가 주인 할아버지에게 불호령을 당하는 일이 많았다.
오월부터 유월까지 각 지방의 기후나 형편에 따라 때를 잡아서 모내기를 시작한다. 좋은 볍씨만 골라 싹을 틔워 심은 못자리에서 기른 모를 쪄서 단으로 묶어 물을 잡아 놓은 본 논에 던져두고 몇 포기씩 골라 줄을 맞추어 옮겨 심는 일을 모내기, 혹은 모심기라 한다.
농부는 모내기 할 때가 제일 마음이 바쁘다. 때를 너무 일찍 잡거나 놓치면 모의 성장에 많은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옛날 모내기철에는 온 동네 사람들이 집집마다 서로 품앗이를 하였다. 모심기 하는 날을 서로 형편에 맞게 의논하여 차례를 정하여 모내기가 늦지 않도록 한 달 가까이 허리 펼 사이 없이 모두 함께 애를 썼다.
사람들이 못줄을 잡은 줄잡이 두 사람의 구령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손으로 모를 심어 나갔다. 그중에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 있으면 모내기소리를 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추임새나 후렴을 넣기도 했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고된 노동을 이기는 한 방편 이었으리라.
모내기하는 날은 할머니와 어머니도 집안에서 새참과 점심 차리기에 바빴다. 큰 밥솥에 밥을 짓고 난 뒤 남은 숯에 통통하게 살이 오른 꽁치를 구워서 한창 윤이 나는 푸른 감잎위에 사람 수대로 나눠 담고, 국과 밥과 반찬을 장만하여 놓으면 일군들이 지게에 지고 들로 나갔다. 아이들은 집에서 담근 막걸리 주전자와 물주전자를 들고 소풍가듯 따라 나섰다.
겨우 허리를 펴고 동네 사람들은 밥을 먹으며 다음 집 차례는 누구인지 서로 묻고 바빠서 아직 베지 못한 보리와 밀을 걱정하며 술잔을 나누었다.
그러나 요즘은 대부분 경지정리가 되어 농기계로 논을 갈고, 써래질을 하고 모내기도 이양기기계로 하니 모내기 할 일은 거의 없다. 동네에 어쩌다 있는 작은 다락논이나 기계가 닿지 못하는 구석에 주인 혼자 모를 심는 일이 있을 뿐이다.
모내기가 끝나고 유월이 지나 칠월쯤이면 논에 벼는 제법 시퍼렇게 되고 논바닥에는 잡풀이 자라서 동네 어른들은 뜨거운 태양빛 아래 손으로 풀을 맸다. 아이들은 시원한 못 둑 그늘에 앉아 어른들의 노동요와 뜸부기의 추임새를 들으며 한낮을 보냈다.
농촌의 고된 노동에 지치고 가난에 지친 청년들은 서울로 떠났으나 다시 돌아오지 못한 것일까, 아이들은 오빠 생각이라는 동요를 부르며 알 수 없는 슬픔을 품었다.
아이들과 벼 잎은 논둑에서 뜸 뜸 뜸하고 우는 울음소리만 들리고 보이지 않는 뜸부기 소리와 동네 뒷산에서 긴 긴 봄날을 울고 있는 뻐꾸기의 섧은 울음소리를 들으며 키가 자라고 몸피를 불렸다. 글/이을숙 시조시인
<오빠생각>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최순애 작사 / 박태준 작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