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일권 편집국장

 

   
 

 

   
 

아침에 눈을 뜨면 스마트폰부터 찾는다. 간밤에 무슨 뉴스가 나왔는지 또 우리 신문과 내 글에 달린 댓글은 몇 개나 되는지를 살피기 위해서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한다. 나를 보는 것인지 남을 보는 것인지,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인지 남에게 비친 나를 보려는 것인지 모르겠다.

스마트폰은 우리 삶에 ‘필수’가 됐다. 손에서 멀어지면 불안감 마저 든다. 이런 스마트폰은 누가 만들었을까. 혹자는 마이크로소프트사라고 한다. 스마트폰의 개념을 처음 제시한 것은 빌게이츠가 소유한 마이크로소프트사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게 퍼뜩 스치는 사람이 스티브잡스다. 아이폰의 창시자, 세상을 바꾼 창의력 천재, 미국의 기업가이며 애플 사의 창업자다.

그는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남과 다르게 생각해 봐’를 주창했다고 한다. 경영 좌우명은 '집중' 이었다.

그의 명언에는 “경쟁에 이기거나 돈을 많이 버는 것을 목표로 잡지 말자. 가능한 한 위대한 일을 하자. 훌륭한 수확은 척박한 자원에서, 즐거움은 절제에서 비롯한다. 모든 것에는 반대급부가 있다. 태어나느라 바쁘지 않으면, 죽느라 바쁠 수 밖에 없다”등이 있다

2011년 10월 5일, 56세의 비교적 이른 나이에 스티브 잡스는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이룩한 신화는 그가 떠난 이후에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주어진 인생을 흘러가는 대로 살기보다는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여 노력했다. 그리고 그런 노력 끝에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혁신적인 제품을 차례로 발표하며 화려한 성공 신화를 일궈 냈다. 그는 실패를 딛고 아무도 가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개척해 냈으며, 나아가 우리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까지 변화시켰다.

바로 그제(5일)다. 포항지역 언론에 스티브잡스가 갑자기 회자됐다. 신년 기자회견을 했던 이강덕 포항시장이 스티브잡스로 ‘빙의’했다는 뉴스가 쏟아졌다.

이 시장은 이날 시청 대회의실에서 2021년 시정운영방향에 대한 신년 기자회견을 가졌다. 여태까지는 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들에게 배부된 자료를 중심으로 읽어나가는 방식이었으나, 이날은 기존의 틀을 깨고 헤드마이크를 사용해 프리젠테이션(PT)을 직접 진행·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를 지켜본 기자들은 ‘스티브잡스’를 연상했다고 한다.

과연 그가 스티브잡스를 닮고 싶어했는지 궁금증이 발동했다. 이 시장은 잡스처럼 ‘주어진 인생을 흘러가는 대로 살기보다는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지’ 묻고 싶었다.
스마트폰을 들고 그와 통화를 시도했다. 이 시장은 “올 한해는 코로나19 후폭풍 때문에 그 어느때보다 힘들고 어려운 한해가 될 것”이라며 “기필코 죽을 힘을 다해 극복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스티브잡스의 인생과 철학을 존경하며 특히 어려움을 극복한 부분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그랬다. 이 시장은 “태어나느라 바쁘지 않으면, 죽느라 바쁠 수 밖에 없다”는 잡스의 철학을 상기하며 지진과 코로나로 쓰러져가는 ‘포항 재건’을 다짐했던 것이다.

필자는 지난 2018년~2019년 이 시장의 시정운영에 대해 혹독한 지적을 한 적이 있다. 정실인사와 독단행정, 규제완화 등과 관련해 신랄한 비판을 지면에 실어 날랐다. 당시 얼마나 심했으면 지인들이 ‘이제 그만하라’며 말리기 까지 했다. 그 이후 휴전없는 전쟁과 갈등은 지속됐다. 그러던 어느날 ‘내가 이강덕을 잘못 알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시간이 지나 갈수록 그가 결정한 사안들이 하나 둘 속내를 드러내며 ‘퍼즐’이 맞춰져 가는 것이었다.

그는 잡스처럼 아무도 가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오히려 필자가 스스로 알아갈 때까지 인내해 줬다. 특히 세상을 바라보는 삶의 방식까지 변화시켰다. 그 덕분인지 몰라도 지난 해 부터는 이강덕에 대한 이해와 이강덕식 행정을 더 정확히 비판할 수 있었다.

이 시장은 경찰공무원 출신이다. 기억을 더듬어 2014년 2월 1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강덕은 ‘포항 & 이강덕’ 출판기념회를 열고 포항시장 입후보 준비에 들어갔다.
자서전은 모두 4장으로 구성돼 있었다. 어린시절부터 해양경찰청장으로 퇴임하기까지의 삶(1장)과 미국에서 단독여행을 하면서 느낀 점(2장), 포항에 필요한 새로운 상상과 에너지에 대한 이야기(3장), 소통의 리더십에 대한 자신의 생각(4장)이 수록돼 있다.
그는 “정신없이 달려온 공직생활을 한 번쯤 되돌아보고 정리할 기회를 갖고 싶었다” 며 “나의 삶과 생각이 누군가의 인생에, 혹은 포항 발전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책을 내기로 마음먹었지만 부족한 점이 많아 부끄럽기도 하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이 당시 그는 ‘새로운 상상력, 새로운 에너지, 새로운 리더십’을 강조했다. 자서전은 고향인 포항의 과거와 현재를 진단하고 나아가 미래 포항 발전 대안을 제시한 정책에세이의 성격을 지녔다. 지금 생각하면 이때도 그는 잡스의 ‘상상력’과 ‘도전정신’을 알았던 것 같다.

2015년 추석때 그는 필자에게 시오노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를 선물로 주었다. 총 15권이라는 방대한 분량의 책이지만, 두 번 이상 읽을 정도로 감동을 주는 책이었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는 말처럼 작은 도시국가에서 세계를 제패한 대제국 로마의 역사와 그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을 보면서 많은 가르침을 얻었다.

훗날 그는 책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애착가는 인물로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꼽았다. 지도자의 리더십은 지금의 시장직을 수행함에 있어 훌륭한 본보기가 된다고 했다. 그는 특히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한 문화를 수용했던 로마인들의 개방성에 감명받았다고 말했다.
또한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율리우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 책을 읽다보니 리더를 비롯한 이 시대의 모든 사람들은 듣기 싫은 소리와 보기 싫은 것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강덕의 별명은 '깡덕이'다. 이름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강덕의 ‘깡’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주로 무엇을 만든 신화창조 주인공들의 공통점은 의지와 인내로 결실을 맺었다. 신화의 주인공이 되려면 ‘깡’이 있어야 한다는 역설이다.

‘깡덕이’에게 스티브잡스의 철학이 내재돼 있다면 필자는 ‘어떻게 살 것인가’의 저자 ‘사라 베이크웰’의 세태진단에 대해 감히 조언하고자 한다.

“21세기는 자기 자신의 세계에 사로잡힌 사람들로 가득하다. 온라인의 바다를 30분만 훑어봐도 자기에게 관심을 보여 달라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을 무수히 만날 수 있다. 이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끊임없이 주절대며, 자아의 향연에 동조하는 사람들과 소통한다”

지진과 코로나19라는 복병을 만난 포항 시민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51만 수장인 ‘깡덕이’는 ‘죽을 각오로 헤쳐 나가겠다’고 했다. 스티브잡스의 철학과 사라 베이크웰의 진단을 더해서 지금 처한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깡덕이’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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