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포 포항명성교회 담임목사


11월은 추수의 계절이고 감사의 계절이다. 들판에 익은 곡식과 아름답게 익어가는 과일들을 보면 문득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봄부터 뜨거운 햇살을 받는 여름을 지나 가을의 풍성한 결실은 또 하나의 신비요 기적이다.

어느 시인의 말대로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는 그렇게 울고,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지나간 세월의 아픈 추억마저 그립게 생각나는 가을이다.

오래전에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여름 궁전을 여행한 적이 있다. 아마 그때가 가을이 깊어가는 11월 어느 날이었다. 바다를 배경으로 숲으로 둘러싸인 여름 궁전의 가을 숲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여름 궁전은 마치 사람이 만든 궁전이 아니라 신이 만든 궁전 같았다. 나무로 둘러싸인 숲은 가을의 절정이었다. 푸른색, 노란색, 빨강색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 러시아의 가을을 마음껏 뽑내고 있었다. 이렇게 자연이 만든 예술은 인간을 더욱 작고 초라하게 만든다. 아름답다는 것은 이렇게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먼 곳에 있다는 것은 또 하나의 기쁨이었다. 자연은 쉽게 아름다움을 내어주지 않는다. 그러나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자연은 아름답게 열려 있다. 왜냐하면 자연은 겸허하고 순수한 사람에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내어주기 때문이다.

최근에 세상을 떠난 이동원 가수는 가을엔 편지를 하겠다는 노래를 남기고 가을에 우리 곁을 떠나갔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 받아 주세요 / 낙엽이 쌓이는 날 /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 모든 것을 헤매인 마음 / 보내드려요 / 낙엽이 사라진 날 /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아름다워요. 노래속에 시인은 모든 사람이 감사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이 가을, 낙엽은 단풍이 되어 우리 곁을 떠나고, 갈대와 억새도 하얗게 이슬 맞은 풀처럼 맥없이 바람에 날려간다. 이 가을 자연에게 편지를 쓰게 된다면 아마도 감사의 말부터 쓰고 싶다. 자연은 모든 것을 인간에게 내어주고도 떠날 때는 말 없이 소리 없이 떠난다. 자신을 뽑내거나 자랑하지도 않는다. 그냥 조용히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사라질 뿐이다. 이렇게 우리는 자연을 통해서 희생정신과 감사의 마음을 배운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범사에 감사라고 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신의 뜻이라고까지 했다. 그렇다. 하나님은 많은 재물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를 원하시고 또한 감사를 기뻐하신다. 그래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미국의 추수 감사절 유래도 자연이 주신 풍성한 감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 서부에 도착했을 때, 이미 많은 사람들이 병으로 죽었다. 그해 추운 겨울이었는데 인디언들의 도움으로 농사짓는 방법을 배웠고 그나마 자연이 주는 도움으로 추수를 할 수 있었다. 청교도들은 자연에 감사했고 인디언들에게 감사했고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감사했던 것이다.

​ 감사헌금에 얽힌 어떤 장로님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그 장로님은 가난 하지만 신실하게 교회를 섬기는 분이었다. 장로님이 시무하는 그 교회의 목사님은 감사절이 돌아오면 교인들에게 미리 봉투를 나눠 주고 작정헌금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예배시간에 목사님이 꼭 발표했다. 그런데 어느 날 목사님이 예배시간에 차례대로 이름을 호명하다가 한 장로님이 작정한 헌금 액수를 발표하는데, 그만 30만원 작정헌금을 “300만원 작정헌금 하셨습니다.”라고 말해 버린 것이다. 장로님은 그 순간 깜짝 놀라며 당황했을 것이다. 그러나 장로님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어떤 불평도 없이 목사님이 잘못 발표된 300만원을 기꺼이 헌금했다. 얼마 후 목사님께서 그 사실을 알고 장로님께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러자 장로님은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목사님 저는 제가 30만원짜리 감사 인생인줄 알고 30만원만 헌금하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목사님의 입을 통해 300만원짜리 감사 인생이라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정말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렸습니다.” 그렇다. 결국 감사의 크기는 깨달음의 크기이고, 감사는 은혜를 깨닫는데서 출발한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큰 물질을 드릴 수 있는 것은 감사를 깨달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11월은 ‘감사의 달’이다. 나는 과연 얼마짜리 감사 인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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