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暎根 주필 한동대 교수

 이번 포스코 지주사 서울 설립과 관련해 최정우 회장은 바둑알을 잘못 놓았다. 최정우 회장이 포항 시민들쯤은 포스코가 하는 일에 가타부타할 만한 형편이 아니니까 지주사를 서울에 하던, 미국에 하던 괜찮을 것이라고 속단한 것이다.

최 회장이 포항을 무시해도 보통 무시한 것이 아니다. ‘포항 사람들쯤이야’ 하는 자만심이 동했는지 몰라도, 포항 사람들도 전깃불 밑에서 공부했고, 수돗물 먹고 자랐다. 포항을 그렇게 무시해도 좋을 만큼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포스코 전권을 가진 지주사를 서울에 옮겨야 할 불가피한 사정이 있다면 포스코 회장이 포항시장을 만나, 진지한 자세로 상황 설명을 하고, 협의가 있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렇게 했다면 포항 사람들도 양해할 마지노선을 제시해 포항도 살고, 포스코도 더 발전할 대책이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 내밀 듯 갑자기 포스코의 전권을 가진 지주사를 서울에 설치한다고 일방적 통고만 하였다니, 포항 사람들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무골충의 허수아비들로 인정한 것이다.

필자는 포스코 유치 시민운동 때부터 참여했다. 울릉도를 방문하고 돌아오던 정일권 총리가 제철 부지 선정에 1순위를 점하고 있던 칠포 해수욕장을 방문해 아주 위치가 좋다고 말한 것을 ‘적지’라는 표현을 첨가해 보도하였다가 경쟁지역이였던 삼천포시가 대대적 반기를 들고 나와서, 모처에 불려가서 조사를 받았던 사실도 있었다. 그래서 포항제철은 필자에게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만큼 애정도 깊었다.

십여 년 전 하와이를 방문했다가 와이키키 해변에서 한낮을 보냈다. 그때 문득 포항제철이 들어선 도구해수욕장이 불현듯 생각났다. 수십만 평에 이르는 해송 숲을 그대로 보존해 개발하였더라면 와이키키는 상대도 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아름다운 숲을 뭉개버리고 제철공장을 건설하는 데는 그보다 더 큰 국가 이익이 있을 것이란 안위를 가졌다.

지나간 이야기지만 당시 대송면 일대 주민들 대부분은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문전옥답을 시세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보상비를 받고 고향을 떠났다.
이미 고인이 된 ‘이재일 선생’은 제철소가 안정적인 바탕에서 엄청난 이익을 올리자 강제수용으로 다 받지 못한 보상비를 받기 위해 혼자 투쟁하다가 세상을 하직했다.

박태준 회장은 평소에도 고향을 떠난 대송면민들에게 반드시 보상해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 남기셨다. 특히 2011년 9월19일 오후 7시 포항시 효자동 ‘포스코 한마당 체육관’에서 퇴직 직원 370명과 19년만에 재회한 자리에서 박태준 회장은 ‘포항시민들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연단에 오른 박 회장은 “우리의(직원) 힘 만으로 기적과 신화를 이룰 수 없었다” 며 “조상의 피의 대가(대일청구권자금)와 고 박정희 대통령, 그리고 포항시민들의 인내와 협조에 대해 우리는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포항 지역사회와 포항제철은 공생공영(共生共榮)의 공동체로 거듭 나아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 발언은 박태준 회장이 포스코에게 ‘포항시민께 보은(報恩)하라’는 마지막 명령이었다. 3개월 후인 2011년 12월13일 오후 5시20분 박태준 회장은 타계했다.

포스코의 본사 이전설은 그동안 수 차례 있었지만, 그때마다 포스코 자체에서 중지했다. 사명 변경 때도 한바탕 소동이 있었지만, 포항제철이 더 잘되기 위해서 이름 하나쯤이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이냐며 포항 사람들은 포항이란 상호 하나 없어지는 것에 딱히 연연하지 않았다.
시민들은 그만큼 포스코를 위해 이해와 협력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명목으로도 이번 지주사 이전은 합리화 할 수가 없다. 서울에 있어야 정보에 낙오되지 않는다는 것도, 시골에 있으니 경쟁력이 뒤떨어진다는 것도, 하나의 핑계일 뿐이다. 지금 어떤 세상인데, 한국의 본사에서 미국 지사에 사업 명령을 하달하고, 그것을 수행하는데 이제는 십 분이면 다 통하는 세상이다.

이제 포스코와 상생은 생각하지 말자. 자기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하고, 포항은 포항대로 가는 길이 있다. 그 길을 이강덕 시장이 찾은 것이 부시장을 단장으로 하는 ‘포스코 전담TF’ 설치다. 포항시도 강경대응으로 맞서지 않을 수 없다. 포스코 지주사 이전대책위원회가 범시민적으로 출범해 자체적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포항시가 손 놓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포스코가 오늘날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포항시민들은 54년 동안 환경오염과 공해 등으로 피해를 입어도 ‘우리 회사’라고 인식하며 감수해 왔다. 시민들은 이제는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각오다. 시민 뜻을 받들어 이강덕 시장은 ‘포스코 전담TF팀’을 설치하고 맞불을 놓는 초강수를 뒀다.

김학동 포스코 부회장은 “철강과 신사업 간의 균형성장을 가속화하고 사업 정체성 또한 친환경 미래 소재 기업으로 발전하기 위해 경영체제의 혁신이 절실하다” 며 “지주사 체제로의 전환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다”고 발표했다.

그렇다고 하자. 그러나 굳이 지주사를 서울에 두어야 할 이유는 없다. 포항에 지주사가 있어도 현대 통신문화는 거리 관념을 완전히 사라지게 했는데 왜 굳이 서울로 가야 하느냐는 것이다. “포스코는 포항을 떠나지 않는다” 이 발표를 누가 믿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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