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일권 편집국장/이사
나폴레옹은 러시아 침공에 실패한 원인을 추운 날씨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당시 날씨는 춥기는커녕 따뜻하기만 했다. 그는 늘 국민을 위해 전쟁에 나선다고 했지만 전황을 수시로 조작하고 가짜 실적을 보고했다. 로마 황제 네로는 로마가 불타오를 때 바이올린을 켠 정신이상자로 묘사됐지만, 실은 시민을 구하러 직접 현장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게다가 바이올린은 그로부터 1500년 뒤에야 발명됐다.
거짓말은 인간 역사의 많은 부분을 왜곡시키고 진실을 은폐하는 도구로 쓰였다.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는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서 하는 말’이기 때문에 조그만 사실이라도 밝혀지면 이를 감추기 위해 더 많은 거짓말을 해야 한다. ‘터무니없는’ ‘새빨간’ 말을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하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거짓말에 위선과 모욕, 위협까지 얽힐 땐 파장이 걷잡을 수 없다. 국회의 싸움이 격해질수록 사회의 이념적 골이 깊어지고 그 골 사이에서 인터넷의 진흙탕 싸움도 치열해진다. 날마다 이런 꼴을 보고 사니 국민들도 전염될 수밖에 없다.
거짓말은 자기를 포장하고 남을 모함하는 짓이다.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자존심과 신뢰는 생명처럼 중요하다. 그런데 거짓말은 상대의 자존심과 신뢰를 한순간에 무너뜨린다. 법에도 명예훼손죄와 신용훼손죄가 규정돼 있다. 그 죄의 대가는 10년 이하의 징역과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다. 결국 거짓말은 자신에게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더 나아가 거짓말도 급수가 있다. 도덕적 잣대 빼고 효과로만 따진다면, 상대를 감쪽같이 속이는 사기(詐欺)나 새빨간 거짓말은 상급에 속한다. 큰 거짓말(Big Lie)중 나치 독일의 선전은 신화적이다.
말하는 이나 듣는 이나 거짓말인지 뻔히 아는 ‘뻥’, 기꺼이 속게 만드는 하얀 거짓말(White Lie)은 경쟁력으로 보면 하급에 속한다. 긴가민가 의심스러울 정도라면 기술이 더 필요한 단계다.
그래도 급수 있는 거짓말로 대접받으려면 거짓말 자격은 갖춰야 한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대는 말’이 거짓말이다. 즉 거짓말의 핵심은 거짓말하는 사람이 사실을 알 뿐 아니라 사실을 존중한다는 데 있다. 그래야 사실이 안 드러나도록 조심을 하고, 거짓말로 밝혀지면 반성하며 사과하는 시늉이라도 한다. 그게 거짓말계의 예의고 상식이다.
국가나 한 지역의 리더가 되겠다고 자처하는 사람은 대중을 현혹시키는 거짓말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거짓말과 속임수는 정치, 전쟁, 스포츠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나타난다. 그리스 신화도 속임수를 빼면 남는 게 별로 없다.
문제는 지금도 하얀 거짓말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들을 한다.
지난 11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포항 방문과 관련해 이강덕 포항시장 패싱(passing) 논란이 일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는 김정재 국회의원이 있었다.
윤 당선인은 이날 포항 일정으로 가장 먼저 자신이 공약했던 영일만대교 건설현장를 찾았다. 소식을 들은 포항시민들은 10년 숙원 사업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윤 당선인 앞에서 현장 브리핑을 한 사람은 경북도청 소속 고위 공무원이었다.
이를 현장에서 지켜본 포항시민들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상황파악에 들어갔다. 시민들은 당연히 포항시를 책임지고 있는 이강덕 시장이 나서서 ‘윤 당선인께 읍소설명’을 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시장은 이날 먼 발치에서 설명을 듣는 입장이 돼 버렸다. 결국 닭 쫓던O 지붕 쳐다본 셈이 된 것이다.
이날 현장에서 발생한 파란의 주인공은 김정재 국회의원이 지목됐다. 대통령 당선인 경호원들이 김 의원의 지시에 따라 이강덕 시장의 현장 출입을 막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정재 의원 측은 “당선인 측에서 도당에 선거 출마자들은 공식적인 행사에 배제시켜달라고 요청했다. 다른 지역에도 선거출마자들은 브리핑에서 제외시켰다. 확인해보면 알 것”이라며 “아직 공천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 당선인과 사진을 찍거나 친분을 과시하면 아무래도 선거에 영향이 가지 않겠느냐. 공정성을 위해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김 의원 측의 해명과 달리, 영일만대교 브리핑 현장에는 송경창 국민의힘 경산시장 예비후보가 이철우 지사와 함께 동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윤 당선인이 안동, 상주, 구미, 경주 등을 방문했을 때 각 지자체장(시장)들은 윤 당선인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즉, 김정재 의원이 밝힌 “당선인 측에서 선거 출마자들은 공식적인 행사에 배제시켜달라고 요청했다”는 것과 “다른 지역에도 선거출마자들은 브리핑에서 제외시켰다”는 해명은 거짓말이 된 셈이다.
가관인 것은 김정재 의원 포항사무실 박모 사무국장은 13일, 이같은 사실을 근거로 기사화한 대경일보 1면 기사에 대해 가짜뉴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가소롭기 짝이 없다.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는 격이 아닐 수 없다. 어찌보면 박 국장의 거짓말은 김정재 의원을 ‘하얀 거짓말쟁이’로 몰아 부치는 행위다.
톨스토이는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작품에서 ‘모르면서 아는 척하지 마라’고 했다. 또한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다른 사람에 대해 나의 정의와 우월, 특권을 거부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라고도 했다.
성경 마태복음 12장34절에는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는 말씀이 있다. 이는 거짓말을 밥 먹듯 하던 바리세인들을 향해 예수님이 꾸짖으시며 하신 말씀이다.
“내가 외로운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외로운 사람을 생각하게 해주소서. 내가 추운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추운 사람을 생각하게 해주소서. 내가 가난한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생각하게 해주소서.” 나태주 시인의 기도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