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포 포항명성교회 담임목사

 좌절은 분노를 유발시킨다. 분노는 강렬하고 흔히 일시적인 불쾌감이지만 그 표현방법은 구체적으로 설명이 어렵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큰소리로 분노를 표출 할수 있지만 동시에 소리를 지르지 않고 침묵하면서도 분노할 수도 있다. 그래서 분노의 감정은 다양하다.

격노와 광분도 분노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이것은 폭발적이고 강렬한 감정을 말한다. 흔히 광분은 파괴적이며 격노는 어떤 상황에 따라 정당화 될수도 있다.

분노를 의미하는 또 다른 말로 격분이 있다. 이것은 보복이나 복수를 하려는 강렬한 의지를 뜻하는 말이다.

원한이란 일반적으로 억눌린 분노이다. 이것은 극도의 슬픔이나 비애의 감정을 자극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그리고 분개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중요한 일에 대해 어떤 사람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거나 옳지 못한 것을 보았을 때 일어나는 감정이다.

이렇게 분노의 감정은 다양하다. 그러나 한가지 정의를 내린다면 불쾌감이나 짜증이 심한 감정이라는 사실이다.

분노는 타인에게서 자극을 받아 생겨난다. 일반적으로 복수, 저주, 질투, 비웃음, 떨림, 고함, 욕설, 앙갚음이나 이빨을 간다는 표현을 통해서도 암시가 될수 있다. 이런표현들은 짜증이나 회한이나 분개한 마음이 두드러지는 특징이 있다.

성경은 에베소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글에서 “여러분은 격분이나 분개한 마음 여러분의 격노나 노여움을 해가 질때까지 품고 있지 마십시오” 라고 했다.(엡4:26)

분노를 해가 질 때 까지 품지 말라는 것은 분노를 빨리 해결하라는 것이다. 분노를 해가 질때까지 해결하지 않으면 편히 잘수도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노하면 죄를 짓는다. 사람은 얼마든지 분노할 수 있다. 그러나 분노의 감정이 불편을 줄수 있기 때문에 빨리 처리하고 없애야 한다.

분노에 대한 성서의 기초적이고 전반적인 관점은 그것이 삶의 한 부분을 이룬다는 것이다. 분노는 부정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통제를 받아야 하는 그 무엇이다. 분노의 감정은 부정적인 행동을 유발하기 때문에 제거해야 마땅하다. 분노는 확실하고 정확한 불의들로 인하여 발생해야 하며, 적절히 쓰여져야 한다. 분노가 부정을 바로 잡고 정의를 세우고 거짓을 드러내고 진리를 세우는 것이라면 그 분노는 긍정적이고 거룩한 분노라고 할수 있다. 그러므로 절제되고 정제된 적당한 분노는 인간을 바로 세우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도 한다.

화가 났을 때 대처하는 방법 중에 일류, 이류, 삼류가 있다. 삼류는 화가 난 순간 속 마음을 그대로 뭐든지 말해버린다. 때로는 뭔가 부수거나 폭력을 휘두르기도 한다. 자신을 통제 할수 없을 정도로 감정을 표출하기에 결국 인간관계에서 갈등, 결별, 해고 등을 겪을 수 있다.

이류는 화가 나면 시간차를 두는 것이다. 인간관계가 깨어지고 인생의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하여 끝까지 참고 말을 입밖에도 내지 않는다. 화가 난 순간은 좀처럼 감정을 수습 할수 없지만 비참한 상태는 피하고 시간이 지나면 평상심으로 돌아와 언젠가는 잊어버릴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불평과 불만의 태도가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고 무엇인가 불복하는 것 같은 감정은 숨길 수가 없다.

일류는 마음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어도 그것을 얼굴이나 태도에 드러내지 않는다. 일류는 분노가 아니라 해결에 초점을 둔다. 마음이 넓어서 상대를 이해 하려고 한다. 상대로부터 기분 나쁜 소리를 들었을 때 화를 화로 대갚음하지 않는다. 화를 자연스럽게 흘러 보내기 때문에 무슨 일을 만나도 늘 자유롭다.

즉각적인 분노는 패자의 분노이고 정제된 분노는 승자의 분노다. 분노감정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분노 관리도 하나의 스포츠 레슨을 배우는 것처럼 오랜 시간을 가지고 훈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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