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일 수필가
같은 16강인데 객관적으로 더 잘 싸운 일본은 죽을 맛이지만 오히려 우리나라는 축제분위기다. 그것은 스포츠도 맥락으로서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스포츠는 감동과 복지를 주는 극본 없는 드라마다. 결과가 전부는 아니다.
이번 월드컵은 예전의 대회와 여러모로 달랐다. 처음으로 중동에서 개최되었고 한겨울인 12월에 열린 것도 처음이다. 코로나로 개최가 연기되었던 도쿄 올림픽과는 달리 정상적으로 열렸기에 스포츠가 코로나를 극복하는 상징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개막식 전에는 올해의 월드컵에 관심이 없었다. 12월에 열린다는 사실도 11월 말에 뉴스를 보고서야 알았다. 사실 올해는 월드컵 뿐만 아니라 스포츠 자체에 신경을 쓸 수 없었다. 좋아하는 팀이 가을야구에 진출하지 못하다 보니 한국시리즈의 최종 결과가 나오기까지 프로야구 경기를 한 번도 시청하지 않을 정도였다.
원래는 스포츠에 관심이 많아 스포츠 경영관리사 자격증까지 땄지만 올해는 스포츠에 관심을 보일 처지가 아니었다. 마음에 여유가 너무 없었다. 척수 수술을 하여 장기간 입원 후 회복을 해야 하는 시기에 승진과 함께 근무지를 옮겨야 하는 환경 변화를 맞았다. 이 와중에 자녀의 대학 입시와 주택 문제를 신경써야 하는 일이 힘들었다.
또한 예전에 수료한 대학원 과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논문도 써야 했다. 12월 초까지 논문을 제출해야 하는데 사무실에 별도로 배려를 요청할 수도 없는 사정이라 퇴근 후 글을 써야 하고 다른 시간을 갖기 어려웠다. 자연히 스포츠나 연예 뉴스에는 관심을 둘 수 없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인데 월드컵의 한국 국가대표팀의 경기까지 안 볼 수는 없었다. 퇴근 후 다른 약속이 없을 때 가질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을 축구 경기 시청에 투자한 것이다. 숙소에 비치된 TV로 보았는데 숙소 TV의 첫 시청이다. 옵션으로 비치된 TV로 평소에 안보기 때문에 1년 이상 꺼둔 상태였고 고장이라도 나서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이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잘 나왔다.
그런데 경기를 시청하다 보니 생체 리듬이 엇박자가 났다. 카타르와 우리나라의 시차 때문에 밤늦게 경기가 열렸고 경기 결과가 모두 첫 실점 후 만회 골을 넣는 패턴이라 마음을 졸이다 보니 에너지 소모가 컸다. 이 때문에 다른 날에도 정상적인 글쓰기가 잘 안 되었다. 결국 제대로 된 논문을 제출하지 못했다. 월드컵 때문만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막판 중요한 시간에 흔들린 영향은 분명히 있다. 모든 것을 잊고 경기 결과만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20년 전인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우리나라는 4강에 들었다. 당시 나는 중요한 자격증 시험을 준비했는데 당시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이 월드컵 때문에 흔들려서 망쳤다는 이야기를 하기에 월드컵은 월드컵이고 공부는 공부라는 말을 하며 비웃었는데 이번에 내가 그런 경험을 한 셈이다.
국가 전체적으로도 월드컵 기간 동안 사건 사고도 많았다. 월드컵 때문에 묻혀버린 이슈도 있을 것이다. 모든 일에서 결과가 100% 좋기만 할 수는 없다. 좋지 않는 결과에 대하여 행복하기 위한 비용으로 여길 것인지 아니면 피해로 여길 것인지 개인의 판단이다. 반대로 월드컵 결과 때문에 동력을 얻어서 오히려 잘된 일도 많을 것이다. 월드컵으로 희비가 갈린 현장이다.
공은 둥글다고 한다. 평소의 객관적인 실력 만으로 결과가 결정되지 않는다. 이번 월드컵에서 유독 승부차기나 페널티킥으로 승부가 갈리는 경우가 많았다. 승부차기는 객관적인 실력보다는 당시의 컨디션이나 운에 좌우되는 경향이 크다.
하지만 평소에 이에 대비한 연습을 해두어야 한다. 즉 이런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침착하게 대처하는 것도 실력이다. 나의 경우도 미리 준비를 많이 해두었으면 월드컵을 아주 즐겁게 보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번 월드컵 때문에 행복했다는 사람이 많다. 나라 전체적으로는 우리에게 큰 기쁨을 주는 축복이었음은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