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련 전 한국외국어대학교 외래교수, 현 선화예술고등학교 출강

떨어트린 통조림을 주워 품에 안고 독일 장교를 따라 옆방으로 간 그는 깡통을 피아노 위에 얹어 놓고, 주저하며 피아노 의자에 엉거주춤 앉는다. 그가 내뿜는 숨이 하얗게 새어 나온다. 굳어진 손가락을 만지며 잠시 망설이던 그는 건반 위로 천천히 두 손을 올렸다. 낮은 도를 두 손으로 무겁게 누르며 시작한다. <쇼팽의 발라드 1번>이었다. 양손 모두 같은 음을 동시에 치는 첫 7마디가 느린 속도로 시작되는데, 낮은 도에서 순식간에 세 옥타브 위의 도까지 연결하며 슬프도록 아름다운 선율이 이어진다. 선 채로 지시하던 독일 장교는 조용히 의자에 앉아서 듣기 시작한다. 이어서 왈츠풍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선율이 등장하는데,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화려하게 움직이다가 어느 순간 조용해지는가 하면 또다시 점점 움직임이 많아지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강렬한 클라이맥스까지 격렬하게 치달아 간다. 이윽고 거친 숨을 고르며, 처참한 단말마의 비명처럼 마지막 화음을 쏟아내며 발라드는 끝난다. 순간, 지옥처럼 끔찍한 침묵이 흐른다. 이윽고, 독일 장교는 어디 숨어있었느냐고 묻고, 그가 숨어있던 다락방을 확인한 후, 차를 타고 가버린다. 스필만은 비로소 목숨을 구했다는 현실에, 울음을 터트린다.

폴란드 태생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쇼팽(Fryderyk Franciszek Chopin, 1810~1849)은 ‘피아노의 시인’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그의 피아노곡들은 선율이 참으로 아름다워서, 마치 음악으로 시를 쓴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즉흥 환상곡을 비롯한 피아노협주곡, 발라드, 야상곡, 왈츠, 에튀드(연습곡), 마주르카, 폴로네이즈, 환상곡 등 많은 장르의 피아노곡들이 있다. 그는 8세 때 피아노의 신동으로 알려졌고, 12세에 바르샤바음악원의 원장에게 작곡을 배웠던 그는 14세 때부터 작품을 출판하면서 연주가이자 작곡가로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1830년, 20세의 나이에 조국 폴란드를 떠나 빈과 파리에서 활동하였던 그는 1849년 10월 17일, 39세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사망하였다.

쇼팽의 <발라드 1번 사단조, Op.23>(Chopin Ballade No.1 in G minor Op.23)는 그의 4개의 발라드 중 첫 번째 곡으로, 그의 나이 26세에 작곡한 곡이다. 청년 쇼팽의 여린 섬세함과 거친 열정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곡이다. 발라드는 ‘이야기를 담은 노래’라는 뜻을 가진 춤곡에서 유래한 자유로운 형식의 기악곡을 말하며, 오늘날에는 대중음악에도 쓰이는 형식이다.

그런데, 실제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스필만이 연주한 곡은 발라드가 아닌 야상곡이다. 스필만은 회고록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건반에 손가락을 대는 순간 손가락들이 경련을 일으켰다. 어쨌든 지금 피아노를 쳐서 몸값을 치러야 한다! 하지만 손가락은 뻣뻣했고, 켜켜이 때로 뒤덮여 있었으며, 은신해 있는 건물에 불이 나는 바람에 손톱도 깎지 못한 상태였다. 게다가 유리창도 없는 방 안에 방치된 피아노는 기계 장치가 습기로 팽창되어 건반이 아주 뻑뻑했다. 나는 쇼팽의 <야상곡 올림다단조>를 쳤다.”

스필만 뿐 아니라 여러 유대인과 폴란드 사람들을 도와주었던 독일군 장교 빌헬름 호젠펠트(Wilhelm Hosenfeld, 1895~1952)는 안타깝게도 소련군의 포로로 감옥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이름을 몰랐었던 스필만이 그의 이름을 알아내는 데만도 몇 년이 걸렸으며, 그를 구하려 사방으로 애썼지만 결국 구하지 못했다.

기억하기조차 끔찍한 바로 그 순간에 독일군 제복 속에 있는 유일한 ‘사람’을 만났다고 스필만은 말했다. “스필만과의 만남은 구원자와 피 구원자가 아닌,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었다”라고 말한 호젠펠트, 그는 너무나 위대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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