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순얼굴경영연구소장

▲ 주원장(출처: 중국 국가 박물관)

   
▲ 이복순 소장

얼굴의 인상이 좌우의 균형이 바르지 못한 상을 말함이니 이마가 비뚤어지거나 눈썹, 눈의 균형이 맞지 않고 코가 한쪽으로 굽어져 있으며 두 귀의 짝이 맞지 않거나 턱이 비뚤어지는 등 얼굴의 윤곽이나 오관의 균형이 일치하지 않는 상을 말한다. 그 성격도 불안정하고 특이하며 비정상적인 면이 있으며 그 운로(運路)도 순탄하지 못하여 극에서 극으로 변화되는 수가 많다.

이 유형은 처음에는 이별하고 흩어진 다음에 건립하고 또는 모두 파괴한 후에야 성공하는 격이므로 부모나 부부,자손의 인연에 있어서도 형상(刑傷)이 있으므로 시련을 겪는 수가 많다.

얼굴의 인상을 논하자면 귀의 좌우가 불균형하면 귀는 초년(1~14세)에 해당하므로 그 이전에 부모에 대한 시련이 있고 이마가 불균형하면 20세 이전에 자기 자신의 학업이 나쁘거나 부모의 시련이 있고 눈썹이 불균형하면 34세 전에 형제, 친척이나 가족 관계에 대한 시련이 있으며 눈의 좌우가 불균형하면 일찍이 부모의 인연에 시련이 없었으면 40세 전에 부부간의 시련이 있으며 코의 균형이 맞지 않아서 극단적으로 삐뚤어져 보이면 50세 이전에 가족 관계에 대한 파란이 있다.

그러나 코가 비뚤어진 사람으로 코와 입 사이의 흠인 인중이 너무 짧거나 좁으면 대개 51·52세에 상처하거나 자손을 잃고 고독하게 되는 수가 많다. 그리고 입이 삐뚤어져 있으면 60세 전후에 자손에 해가 있거나 아니면 부부간에 이별수가 있으며 턱이 비뚤어져 있으면 말년운에 불안정한 변화를 초래하니 특히 주거지의 재난이 있다고 하겠다.

여자 용자상 중에서 특히 두 눈의 좌우 크기가 차이가 너무 심하거나 눈동자의 검은 자위 양쪽 균형이 일치하지 않고 삐뚤어져 있으면 대개 초혼은 실패하고 재혼을 하지만 여기에 귀가 뒤집혀지면 자손에게까지 해가 있어 유산되는 수가 있으며 인중에 흠이 있거나 주름으로 어지럽다면 더욱 자손의 인연이 부족한 편이다.

위의 모델은 중국의 명(明)나라를 건국한 황제 주원장(朱元璋)으로 ‘홍무’라는 연호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홍무제라고도 한다. 후저후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17세가 되던 1344년에 기근이 들어 부모와 큰 형이 전염병에 걸리고 굶어 죽자 나머지 형제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자신은 황각사의 승려가 되었지만 먹을 것이 없어 탁발승으로 버렁뱅이 같은 삶을 4년 동안 살았었다.

1351년에 백련교도를 주축으로 한 ‘홍건적’이 봉기하자 홍건적인 곽자흥(郭子興)의 수하로 들어가 여러 번 전공을 세웠으며 곽자흥의 양녀인 마 씨 처녀와 혼인하여 1368년 중국 남부 전체를 장악하며 난징에 명(明) 제국을 세워 중국 토착 민족인 한족(漢族)의 지배를 회복했다.

스스로를 홍무제(洪武帝)라 칭하며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 중 하나로 간주된다. 한나라를 세운 유방과 더불어 농민 출신, 거지 탁발승이 자신의 힘으로 황제의 지위까지 오른 세계사에서 가장 뛰어난 입지전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황제가 된 이후 북방민족의 잔재를 말끔히 털어버리기 위해 ‘호복변발’을 일체 금지하고 한족 고유의 옷차림과 머리모양을 하게 하고 유교의 가르침을 장려하며 과거체제를 실시해 사대부들이 다시 관료로서 국가를 경영하도록 하였으며 정부의 권위와 기본적 국민윤리에 대한 인식이 사대부뿐만 아니라 일반 서민들에게까지 퍼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육유(六諭)'라는 것을 반포했다.

'부모에게 효도하라, 웃어른을 공경하라, 자식들을 바로 가르쳐라, 이웃끼리 화목하라, 각자의 직무에 충실하라, 옳지 않은 일을 옳다고 하지 마라'는 이 교훈(육유)을 각 동네마다 매월 여섯 번씩 전체 동민이 모여 낭독하도록 했다. 훗날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국민교육헌장' 등이 이를 본받은 것 같다.

그리고 국가가 나서서 개간과 둔전 사업을 적극적으로 벌이고, 치수와 관개사업 역시 힘썼다. 이렇게 농민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고 농업을 국가의 기반으로 운영하도록 하였다. 시대를 떠나 백성들을 배부르게 먹이는 것(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 정치를 하는 기본인 것 같다.

명 태조 주원장은 중국을 통일하고 과거제도를 정비하며 전국의 토지를 조사하여 토지대장을 만들고 인구 조사를 하여 이를 토대로 세금을 거두는 등 업적을 많이 남겼으나 역대 황제 중에서 가장 못생긴 추남으로 누가 자신을 비웃는 것을 극단적으로 싫어하고 불우했던 옛 시절을 부끄러워 했다. 그는 상소문이나 공문서 등에 '광(光)', '승(僧)', '적(賊)' 자가 들어가 있으면 그것을 쓴 사람을 가차 없이 처형했다.

광은 승려였던 자신의 깎은 머리를 연상시키며, 승은 승려를, 적은 도적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런 검열은 갈수록 심해져서 비슷한 발음도 금기어가 되었다. 아무리 뛰어난 인물이라 해도 자신의 과거와 외모에서 자유롭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함규진 서울대학교 교수의 인물세계사 일부 인용.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