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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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위덕대학교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
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언제인가는 꼭 써야지 하고 마음먹었던 작품이 있었다. 대학교 시절에 읽은 이후로 가슴 한 구석에 늘 남아 있으면서도 한 번도 읽으려고 하지 않은 작품이다. 아마 너무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와 다시 읽기가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오지 않은 고도를 기다리면서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눈 두 주인공에게서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고독감과 소외감을 적나라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35여 년 만에 다시 읽어 본 작품은 바로 사뮈엘 베케트의『고도를 기다리며』이다.
이 작품은 1969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희곡으로 소설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내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작품 속 주인공을 만나 보고자 한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총 2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무대는 시골 어느 한적한 길, 앙상한 나무가 한그루 서 있을 뿐 아무것도 없다. 그 앙상한 나무 아래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라는 두 떠돌이가 고도를 기다리며 의미 없는 대화에 열중한다. 거기에 포조와 럭키라는 두 남자가 나타나 한데 어울리다가 사라진다. 날이 어두워지자, 한 소년이 나타나 고도씨는 오늘 밤에는 못 오고 내일은 꼭 온다는 말을 전하고 가버리면서 제1막이 내린다.
제2막은 그 다음 날로 제1막과 마찬가지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고도를 기다리며 주고받는 의미 없는 대화가 펼쳐진다. 마지막에 또 소년이 나타나 고도씨는 오늘 밤에는 못 오고 내일 온다는 말을 전한다. 블라디미르롸 에스트라공은 실망하지만, 고도는 '내일'은 올 것이라고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1막과 다른 점은 2막에서는 단 하루라는 시간 밖에 흐르지 않았는데 포조가 장님이 되고 럭키는 벙어리가 되었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고도를 기다리지만 고도는 결국 오지 않았다.
이 『고도를 기다리며』는 무엇보다도 '고도'가 누구냐 하는 것이 키포인트일 것이다.
지금까지 '고도'가 누구인가를 명확히 밝힌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적어도 '고도'는 무언가의 상징일 거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고도가 구원자라는 사람도 있고, 자유, 희망이라는 사람도 있다.
또한, 이 작품이 2차세계대전 당시에 쓰여졌기 때문에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을 기다리는 것이라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작가 베케트는 1939년 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프랑스 친구들의 레지스탕스 운동에 가담 했는데, 나치에 발각되어 당시 독일의 비점령 지역이었던 프랑스 남부 보클루즈에 숨어살게 되었고, 거기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일 뿐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베케트는 다른 피난민들과 함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냈는데, 이 경험을 바탕으로 대화형식인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가 탄생되었다고 한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해 주듯이 작품 속에 보클루즈라는 지명이 그대로 나온다.
좌우지간 고도는 상징적으로 인간이 간절히 기다리는 그 무엇인가를 의미함에는 틀림이 없다.
그럼, 나는 오랫동안 고도를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무엇이 오기를 기다린 것일까. 아직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일까. 아니면 이미 고도를 만나기라도 한 것일까.
그런데, 내게 있어서 분명한 것은 20대에 기다렸던 고도와 50대에 기다리는 고도가 다르다는 사실이다.
놀랍게도 나는 비로소 오늘에서야 20대에 간절히 기다렸던 고도를 만나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완전히 다른 새로운 고도를 마음속으로 기다리게 되었다. 35여년 만에 『고도를 기다리며』를 다시 읽으면서 얻은 예기치 못한 성과에 나 자신도 스스로 놀라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도 오랜만에 다시 한번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어본다면 나와 같은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