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모니카 수필가

길이 끝나는 길에 나는 앉아 있었네
나도 끝이 나서 할 일을 잃었네
둑은 터지고 마을은 물 아래 있었네
사람 길 다 끊겨 적막한 밤에
끊긴 길 위에서 밤을 지새네
나와 오래 한 몸이던 이 길이
이 밤 이리도 낯서네

​이대로 이 적막 위로 동이 트는데
아무도 없는데 누가 날 쳐다보는 듯
자꾸 귓불이 가려웠는데
낮은 길섶 안개 속에 구절초 한 송이
옅은 햇살에 뽀얀 얼굴로 날 보고 있었네
저리도 따스웁게 날 보고 웃는 꽃 한 송이 아,
저 꽃 한 송이가 나를 일으키네

​아하, 언젠가 우리 어디선가 어디에선가
아주 아주 오래전에 내 곁에서
눈을 반짝이며 말없이 오래 머물다 간 사람
이렇게 다시 만나네
금생에 이렇게 다시 만나네

<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자신이 버팅기고 살아야 할 근거지가 사라져버렸다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충격을 가져올 터, 시인은 ‘사람 길 다 끊겨 적막한 밤, 끊긴 길 위에서’ 밤을 지새며 절망보다 더한 고통을 새기고 있다. ‘둑은 터지고 마을은 물 아래’ 잠겨있었다면 갈 곳이 없다는 말일 게다. ‘길이 끝나는 길’에 앉아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어이없고 막막해서 서 있을 힘도 없고 말조차 안 나올 것이었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 절절한 외로움이 파장처럼 밀려든다.

일어서지도 못할 만큼 힘겨울 때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곁을 지켜주었다면 그보다 더 큰 위로는 없을 것이었다.

‘낮은 길섶 안개 속에 구절초 한 송이 옅은 햇살에 뽀얀 얼굴’로 웃어주는 구절초 한송이, 아니 한 송이 구절초 같은 사람이 있었다. 시인이 본 ‘꽃 한 송이’란 꽃과 같은 사람 하나인 것이다. 시인의 기뻐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모든 것 다 잃었어도 잃지 않은 귀중한 한 사람이 곁을 지켜준다는 사실에 시인은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는다. 내 주먹도 불끈 쥐어진다. 구절초의 싱그런 향내라니~ <박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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