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승 여행가

▲ 동 루이스1세 다리와 도루강 주변 풍경.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역이라는 포르투의 상 벤투역.

 

   
▲ 강재승 여행가

 강물의 생애

다리의 아래층은 차량과 보행자가 다니고 위층은 전철과 보행자들이 다닌다. 핸드백, 모자 등 와인병 마개 재료인 코르크로 만든 다양한 특산품을 판매하는 노점상들을 지나 다리 위층으로 올라간다.
주변을 돌아보니 그 자체로 훌륭한 전망대다. 강 건너편은 포트와인 지하 저장고 와이너리 시설이 많은 빌라노바 데 가이아, 강 이쪽은 중세풍 건물이 많아 빈티지한 분위기를 풍기는 포르투다. 사실 빌라노바 데 가이아 입장에서는 포르투라는 이름에 묻혀버린 언성 히어로 기분이 들 것 같다. 사람들은 포르투가 아름답다고 말할 뿐 빌라노바 데 가이아가 아름답다고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동 루이스1세가 누군지는 몰라도 이 다리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준 것에 아주 흡족해 할 것 같다. 1886년 개통된 이 다리는 포르투의 시그니처이자 최고의 명물이 되었으니까.

강 하구로 갈수록 이 그림엽서는 겸손을 모른다. 형형색색의 돛을 올린 요트들과 소형보트들, 관광객들을 태운 유람선이 느으으리이게 물살을 가르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음계가 낮아진다.
저 많은 카페와 레스토랑의 야외 테이블에서 와인 잔을 기울이는 사람들, 강가에 앉아 밀어를 주고받는 연인들, 그들의 배경에서 감미로운 선율을 연주하는 버스커들의 마음까지 어루만지며 도루강은 흐른다. 나도 강물처럼 따라 흐른다.

긴 여정의 끝에서 대서양과 조우한 도루강은 도도하면서도 차분하다.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조급하게 달려왔을 강물은 이제 지난 여정을 되돌아보며 주섬주섬 생애를 거두어들이고 있다. 이제 애써 흐르지 않아도 썩지 않고, 애써 휘돌아가며 그리워하지 않아도 될 새로운 세상에 이르렀으니 장하다 생을 마치는 모든 강물은.
하류로 갈수록 강물이 느려지는 까닭은 고단했던 생애가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시간들이었음을 뒤늦게 각성한 탓일까. 바다가 저렇게 밤낮으로 쉬지 않고 몸을 뒤채는 것은 더 이상 갈 곳이 없기 때문이며, 그러지 않으면 썩어가기 때문임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일까.

강가에 들어선 음식점과 카페를 차지하고 앉은 사람들도, 오가는 시민들이나 관광객들도, 심지어 기념품을 파는 노점상들도 소란한 듯하면서도 시끄럽지는 않다. 모두가 도루강을 닮았다.
그렇다고 도루강이 고요하고 평화롭기만 한 강은 아니다. 19세기 초 나폴레옹이 포르투갈을 침략했을 당시 이 지역 사람들이 도루강을 건너던 중에 프랑스 군의 공격을 받아 수 천 명이 숨진 비극의 강이기도 하다. 2001년 봄에는 우리의 성수대교 붕괴와 같은 불행한 사고도 겪었다.

평화와 아름다움은 거저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랜 고난과 고통의 열매이며, 그 고난과 고통의 시간이 오랫동안 숙성되었을 때 맛볼 수 있는 달콤함일 것이다. 마치 포르투의 포트와인처럼.

포르투와 도루강의 아름다움을 완성시켜 주는 것은 노을이다. 포르투 하늘의 금빛 에어쇼는 긴 인고의 시간을 견디고 마침내 더 큰 세계에 이른 도루강에 바치는 헌사이다. 만약 포르투를 오감으로 느끼고 싶다면 모루공원에서 와인 잔을 기울이며 도루강의 일몰을 바라보는 것을 권한다. 그때 당신은 자신도 모르게 기도하게 될 것이다. 내 생의 언저리에도 저 같은 금빛축복이 소리 없이 내려앉기를.
다시 숙소를 찾아갔다. 아침에 서두르느라 조끼를 두고 나온 탓이다.
숙소로 가다 우연히 고풍스런 건물을 만났다. 많은 사람들이 드나든다. 호기심에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사방 벽에 푸른 타일 그림이 붙어있다.

푸른 타일 그림은 포르투갈 고유의 독특한 타일장식 아줄레주다. 미술관인가? 알고 봤더니 뜻밖에도 이곳은 포르투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상 벤투역이다. 포르투 교외를 오가는 단거리 열차들의 종착역이다. 상 벤투역은 1905년부터 1916년까지 무려 2만여 장의 타일로 이루어진 아줄레주 대작으로 유명하다. 레온 왕국의 독립전쟁과 항해왕 엔리케 왕자의 전투 장면 등 포르투갈의 역사적 사건들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상 벤투역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역이라는 찬사를 듣는 것은 보자르 양식을 한 웅장한 외관과 함께 역사의 내부를 장식한 아줄레주 벽화들 덕분이다.

숙소에서 조끼를 찾고 점심을 먹기 위해 1층 레스토랑으로 갔다. 어제 저녁 2층 숙소 입구를 알려줬던 중년의 남자 주인이 반긴다.
우리 음식 족발이 연상되는 음식에 삶은 양배추와 밥이 나왔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 리스본 행 티켓을 구입했다. 20유로, 한화로 약 2만 6천원 쯤 됐던 것 같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지만 별수 없었다.
숙소를 찾아가는 일은 언제나 하나의 미션이다. 앱으로 예약을 하고 가는 길이라 근처까지 가는 일은 어렵지 않지만 문제는 숙소 근처에 숨어 있었다. 길찾기 앱이 제 일을 다 했다며 뒤도 안 돌아보고 종적을 감춰버리고 나면 숙소는 항상 나를 시험이라도 하듯 숨바꼭질을 하자고 들었다. 유럽의 게스트 하우스는 간판을 달지 않는다. 불법영업인 걸까? 이유는 아직도 모른다.

어제 포르투의 숙소도 그랬고 오늘 리스본의 숙소도 마찬가지였다. 주소는 정확한데 그 자리에 호텔이 떡 하니 서 있다. 로비에 물어보니 2분 정도 더 올라가라고 한다. 한 집 한 집 주소와 대조해가며 한참을 올라가도 보이지 않는다. 한 가게에 들어가 주소를 들이밀자 다시 내려가란다. 가다보니 아까 그 호텔이다. 프런트에 사정을 말하자 아까와 같은 말만 한다. 몇 번이나 오락가락했을까. 간신히 좁은 입구를 찾았다. 아까 그 호텔 바로 옆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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