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은 ‘86세대’...이재명은 ‘친문’ 겨냥
4·10 국회의원 총선을 73일 앞두고, 여야는 ‘자객 공천’ 소용돌이에 급속도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국민의힘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주류 세력인 ‘86 세대’를 겨냥한 출마 선언이 잇따랐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친명 비례대표 및 원외 인사들의 친문 현역 의원 지역구 출마선언이 이어졌다.
여야의 자객공천은 전국적 관심이 집중되면서 이변을 연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기존의 현역 의원들을 ‘기득권자’, ‘꼰대’ 등으로 낙인찍음으로써 도전자가 바람을 타기 좋은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점쳐진다.
하지만 자객공천이란 용어 자체가 특정인이나 특정 세대에 대한 혐오를 바탕으로 한 만큼 인물에 대한 선입견을 형성하게 되고, 정책대결을 실종시키는 등 후유증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이 타깃으로 삼은 ‘86’이란 1960년대에 태어난 1980년대 학번으로 재학 때 학생운동권 이력을 바탕으로 정치권에 진출한 집단을 일컫는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들이 수십년간 특권을 누리고 있어 청산해야 한다며 4·10 총선 구도로 '운동권 심판론'을 일찌감치 설정해 이른바 한동훈표 '자객 공천'이 현실화하고 있다.
한 위원장은 29일 비대위 회의에서도 "국민의힘은 이번 총선에서 운동권 특권 정치의 심판을 시대정신으로 말한 바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 위원장은 "자기 손으로 땀 흘려서 돈 벌어본 적 없고 오직 운동권 경력 하나로 수십년간 기득권을 차지하면서 정치 무대를 장악해 온 사람들이 민생 경제를 말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라고까지 말했다.
윤재옥 원내대표도 이날 "총선은 경제·민생을 살리는 실력 있는 혁신 여당을 선택할 것이냐, 낡은 이념에 빠져 운동권 특권과 기득권을 수호하는 운동권 야당을 선택하느냐의 싸움이 될 것"이라고 거들었다.
이러한 기조에 맞춰 여권 인사들은 민주당 86 정치인들의 '텃밭'으로 여겨지는 지역구에 속속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앞서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민주당 이재명 대표 지역구인 인천 계양을 출마를 전격 선언했고, 김경율 비대위원은 정청래 최고위원 지역구인 서울 마포을에 출마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서울 구로을에는 태영호 의원이 출마 의사를 밝혔다. 이곳은 국민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윤건영 의원 지역구다.
YTN 앵커 출신 국민의힘 영입 인재인 호준석 대변인은 구로갑에 도전장을 냈다. 이 지역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초대 의장 출신인 4선 중진 이인영 의원이 현역이다.
서울 중·성동갑에는 여당 내 '경제통' 윤희숙 전 의원이 전날 출마를 선언했다. 이곳은 전대협 3기 의장을 지낸 임종석 전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이 출마를 준비 중이다.
검사 출신인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은 서울 영등포을에서 3선 김민석 의원과 대결을 예고했다. 김 의원은 대표적인 ‘86세대’로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전국학생총연합 의장 출신이다.
이승환 전 중랑을 당협위원장은 서울 중랑을에서 전대협 6기 의장대행 출신인 박홍근 전 민주당 원내대표와 맞붙는다.
전상범 전 부장판사는 서울 강북갑에서 경희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현재 민주당 이재명 대표 비서실장인 천준호 의원 잡기에 나설 계획이다.
반면 마포을 공천과 관련해 '사천(私薦)' 논란이 불거진 것처럼 자객 공천이 예상되는 곳의 국민의힘 내부에서 각종 잡음이 발생할 여지는 있다.
이날도 한 위원장이 윤희숙 전 의원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을 두고, 해당 지역에 출마 의사를 밝힌 다른 예비후보의 반발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중·성동갑 예비후보로 뛰고 있는 권오현 전 대통령실 행정관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윤희숙 전 의원이 과연 민생 경제를 살릴 적임자인가"라며 한 위원장의 발언을 따져 물었다.

자객공천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친명(친이재명)계와 친문(친문재인)계 간 공천을 둘러싼 갈등이 본격화하고 있다.
원외 친명 조직은 문재인 청와대 및 장관 출신 인사들을 향한 ‘불출마’ 압박을 노골화하는가 하면 전·현직 주류 세력 간 주도권 다툼이 4월 총선 이후 8월 전당대회까지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친명 초선 비례인 이동주 의원은 친문 4선 홍영표 의원 지역구(인천 부평을)를 넘보고 있다.
양문석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감사는 3선 전해철(경기 안산상록갑) 의원 지역구를, 김우영 더민주전국혁신회의 상임대표는 재선 강병원(서울 은평을) 의원 지역구를 노리고 있다.
양문석 전 상임감사는 전해철 의원 등 비명계 의원들을 ‘수박’으로 직격했다가 ‘당직 자격정지 3개월’ 징계를 받기도 한 인물이다.
김우영 대표는 강원도당위원장직을 유지한 채로 서울 은평을 출마를 저울질해 지도부로부터 주의 조치를 받았다.
이에 대해 비명계에서는 “징계나 주의 조치를 받은 사람들이 당 검증위원회에서 ‘적격’ 판정을 받아내는 등 지도부가 사실상 당내 갈등을 방치한다”라며 반발하고 있다.
검증위를 통과한 뒤 돌연 친문 현역 의원 지역구로 출마 지역을 바꾸는 경우도 나왔다. 친명 이연희 민주연구원 상근부원장은 ‘서울 동작을’로 출마하는 것으로 당 검증위를 통과했지만, 지난주 돌연 친문 3선 도종환 의원 지역구인 충북 청주흥덕에서 출마를 선언했다.
이는 서울 동작을 현역이 친명 이수진 의원으로서 자파끼리는 서로 안배하고서 타파 지역만을 집요하게 파고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비례대표 이수진 의원도 서울 서대문갑 출마 의사를 철회한 뒤 이틀 만에 친문 윤영찬 의원(경기 성남중원) 지역구에 출사표를 던져 친명들이 노골적으로 친문을 공격하는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