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유현 (사)안전지킴이운동본부 감사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호들갑스러운 사회가 됐을까 싶어졌다. 사회를 혼란스럽게 한 것은 미국 쇠고기 수입 문제로 촉발된 ‘쇠고기 파동’ 때와 세월호 사건이 터졌을 때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는 더 호들갑스러운 것 같았다.

민족성을 탓하는 소리도 들리는데, 우리는 염치와 체면을 중요시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알며, 태평스럽게 팔자걸음을 걷기 좋아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인지 19세기 초 우리나라를 소개한 책을 쓴 선교사는 제목을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 했다.

그런데 1세기가 조금 넘는 세월 동안에 어쩌다가 이렇게 변했을까?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것이 일차 책임일 것이고, 언론의 책임도 작지 않을 것 같다.

정부의 신뢰 문제는 근세사만 봐도 당연해 보인다. 세상은 유럽 열강들이 부국강병 정책으로 아메리카를 식민지로 만든 것을 시작으로 아프리카, 인도, 동남아시아를 나눠 차지했고, 중국, 일본, 조선을 두고 각축을 벌이던 시대였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고 있었는데, 소중화라는 자가당착에 빠져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살던 선비들과 기득권 유지를 위해 매관매직까지 일삼던 무능하고 부패한 왕과 조정대신들은 그런 정보를 전해 듣고도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아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으니 정부가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조선을 강탈한 일본은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처럼 강대국이 되기 위해 필요한 천연자원과 노예를 얻기 위한 것이었으니, 원성만 산 것이 당연할 것이다.

외국의 도움으로 해방이 되고 건국을 할 수 있었지만, 그 기쁨도 잠시 남침으로 터진 6.25전쟁은 자신과 가족 이외에 의지할 데가 누구였는가? 우리의 대통령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나라를 세웠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공적은 인정받고 있지만, 장기집권을 위한 부정선거 때문에 민중의 분노를 사 하야를 하고 미국에 망명까지 해야 했고, 고속 경제성장으로 잘 살 수 있게 기틀을 쌓은 공적은 박정희 대통령의 치적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지만, 비명에 가는 바람에 나라를 졸지에 가장을 잃은 가족처럼 만든 책임과 그로 인해 사회를 몇 십 년 동안 혼란스럽게 된 책임은 작지 않으며, 그 후 감옥에 갔다 온 대통령도 있고, 그렇게까지는 아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국민 대다수의 존경을 받지 못하니 정부에 대한 신뢰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언론은 사건 사고의 본질을 독자들에게 알려 정보를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 임무일 것이다. 그런데 메르스 사태의 경우 바이러스에 의해 발병되는 독감의 일종이라는 사실과 걸리지 않기 위한 요령을 알려주는 정도로 멈췄으면 좋았을 걸, 늘어난 사망자와 환자의 수를 운동경기 중계방송 하듯 종일 보도함으로써 공포심을 키웠다. 거리에 산보하고 장보러가는 것조차 꺼리도록 만들었고, 온통 마스크를 쓰고 다니게 했다. 아프고, 죽을 수 있으니까 병이지 그렇지 않으면 병인가. 매일 교통사고로 사람이 죽고, 암이나 결핵 등은 물론 일반 독감으로도 많이 죽는다.

우리나라는 누가 세웠는가? 헌법과 법률을 제정한 사람이 우리들의 대표자들이고, 정부를 운영할 최고 책임자도 국민이 선출했다. 대한민국을 세운 사람은 잘 되도록 할 책임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은 미국의 경우라면 시민권자가 아니고 쫓겨날 염려하지 않고 직업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영주권자와 같고, 조선시대의 경우 백성과 같다.

미국에서 911 테러라는 끔직한 사건이 터진 그 날 대통령이 국민에게 한 성명에서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호소하는 내용이 있었다 한다. 한 주간의 애도 기간이 끝나자 그렇게 됐다. ‘관계 장관을 문책하라’라든지, ‘대통령은 물러나라’라는 구호가 있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정부를 믿고 차분히 기다리고 대처하는 사회가 선진국이 아닌가 싶다.

논란이 있는 사건이 생기기만 하면 정부에게 책임을 돌리는 반정부 데모를 주도하는 몇몇 사람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린다. 흥분하고 호들갑을 떨면 그럴수록 사회가 평온해지지 못하고 우리들의 삶만 고달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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