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정규 동국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암(癌)은 한국인의 사망원인 1위인 질병이다. 우리나라 국민이 기대 수명인 83.5세까지 생존할 경우 암에 걸릴 확률이 36.9%라고 한다. 이 말은 암이 살아가는 동안 10명 중 약 3~4명이 걸릴 정도로,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흔한 병이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암으로 진단 받은 환자에게 임상적 완치로 간주되는 5년 생존율이 71.5%가 됐다.
또한, 우리나라는 2020년 기준 암을 앓고 있거나 과거에 암을 앓았으나 생존해있는 암 경험자가 228만 여명이다. 이 말은 이제 암은 임박한 죽음을 의미하는 불치병이라는 과거 개념에서 잘 관리하면 장기 생존이 가능한 만성병의 개념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암 경험자와 그 가족들까지 생각한다면 암은 이제 더 이상 특정인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화두가 되었다.
이전에는 암 경험자의 신체적 치료와 생존율을 높이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면 이제는 신체적 완치뿐만 아니라 정신사회적 치료, 암과 함께 살아가며 어떻게 ‘디스트레스(distress)’를 잘 관리하며 살아가야 하느냐에 대한 삶의 질이 중요한 문제가 됐다.
디스트레스는 일상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스트레스(stress)’라는 용어로는 암 경험자의 스트레스를 너무 가볍게 생각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암 경험자의 정신적 고통을 표현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암 진단을 받고 디스트레스를 겪지 않는 사람은 없다. 암 경험으로 인한 디스트레스는 심각한 교통사고, 전쟁에의 노출, 생명에 위협되는 폭력, 성폭력, 천재지변을 겪는 것 같은 트라우마에 버금간다.
암 경험자의 디스트레스는 때로 암 자체보다 삶의 질을 더욱 저하 시킨다. 따라서 암 경험자의 치료에 있어서는 디스트레스에 대한 올바른 관리로 삶의 질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미국종합암네트워크(National Comprehensive Cancer Network, NCCN)에서는 암 경험자들의 디스트레스를 필수적으로 측정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암 경험자의 ‘디스트레스 관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시대이다.
실제로 디스트레스 관리를 배우고 실천한 암 경험자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암 경험자들은 디스트레스 관리를 통해 우울, 불안, 불면 같은 정신 증상뿐 아니라, 통증, 피로감, 메쓰꺼움 등과 같은 신체 증상의 호전을 경험하며 암 치료 효과를 높이고 재발율도 낮추고 생존율도 증가시키고 암 경험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경우가 많다.
또한, 디스트레스 관리를 통해 암으로 인한 절망이 더 나은 삶을 향하는 희망으로 바뀌는 놀라운 경험을 하기도 한다. 암과 같은 극심한 ‘디스트레스’ 즉, ‘트라우마’ 이후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 과정을 경험하기도 한다.
암은 디스트레스일 수 있다. 암은 고통일 수 있다. 어디 암 경험자 뿐이겠는가? 가수 나훈아의 ‘테스 형’이라는 노래로 2500여 년을 소환되어 온 소크라테스, ‘테스형’ 가사에 “아!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라는 가사가 나온다.
그렇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자체가 만만하지 않다. 힘듦의 연속이다. 간신히 버텨 큰 힘듦 없이 살아간다 싶을 때, 나에게 절대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 했던 일이, 또 다른 힘듦으로 찾아온다.
‘테스 형’이라는 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세상이 왜 이렇게 힘들까?” 왜냐하면, 인생의 디폴트 값(default value) 즉, 기본 값이 고통이기 때문이다. 고통에서 예외인 인생은 없다.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동안 고통은 숙명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하나의 큰 도전이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엄연한 현실'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왜 암에 걸렸나?' 하면서 분노하며 현실을 부정하거나, '암에 걸렸다. 모든 게 끝났다. 노력해서 무엇하나?' 하면서 절망에 빠진다면 고통이다.
암을 경험해도 삶의 한 부분으로 수용하고, 디스트레스를 부정하거나 피하지 말고 잘 마주하자. 디스트레스에 눌리면 절망이고 디스트레스를 다루면 희망이다. 희망으로 나아가자. 희망은 느낌(feeling)이 아니다. 희망은 행하는 것(doing)이다. 디스트레스 관리의 행동을 하자. 행하는 것(doing)이야말로 희망이며 가장 강력한 항암제이다.
'힐링닥터’라는 닉네임으로 잘 알려진 사공정규 교수는 의학박사이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현재 동국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과장·교수로 재직 중이며 동국대학교 심신의학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또한, 정신인문치유강연가, 작가, 치유농업사, 칼럼니스트, 방송인으로도 활동 중이다
하버드의대 메사추세츠종합병원(MGH) 우울증 임상연구원과 방문교수, 보건복지부 한국우울형표준진단평가지침개발연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우울증 교과서의 집필진으로 참여했고, 보건복지부 인증 한국형자살예방교육 프로그램인 ‘보고 듣고 말하기’ 개발진에도 참여한 우울증 전문의이다.
교보문고 대구점 출판기념회 최근 10년 도서판매 최고 기록의 역사를 새로 쓴 '마음출구 있음_YOU TURN'등 11권의 저서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