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문 한동대 명예교수

미국에 와서 가장 먼저 하는 일 중 하나가 앞뒷뜰을 돌아보고 무성한 나무와 화초들을 다듬는 것이다. 매주 화초와 나무도 다듬고 청소하는 이들이 오지만 제대로 다듬는 건 아니기에 이번에도 30년 된 무성한 포도넝쿨을 크게 잘라내고, 뒤뜰 가장자리에 있는 높게 솟은 왕갈대들도 손보았다. 이 왕갈대는 35년전 인근 기도원 뒷산에서 한포기 캐온 것을 심은 것인데, 높이 6~7m 줄기 폭 4~5cm로 숲을 이루고 있다. 한동안 이것이 대나무냐 갈대냐 친지들간 논쟁을 벌이기도 했고, 필자는 왕갈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가지를 잘라내며, 대나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전통적인 대나무는 아니지만 갈대이기에는 너무 거대하고 줄기가 단단하여 잘라내기가 힘드니 말이다.
앞뒷뜰 가장자리에 크게 우거진 것은 야생 알로베라(Aloe Arborescens)인데, 지난 여름 너무 더운 탓인지 뒤뜰 것들은 크게 시들어 있다. 가장자리라서 스프링클러가 닿지 않은 탓도 있지만 우기가 다가오니 다 잘 살아나리라 믿고 있다. 뒤뜰에 아름들이 단풍나무가 있었는데, 몇 년전 베어 버려 그루터기만 남아있다. 하지만 큰 문제는 옆집과 사이에 자라난 거대한 오크추리이다. 이는 보존종으로 지정되어 있어 자르지도 못하고 다듬기만 할 수 있는데, 나중에는 줄기가 지붕 위를 크게 덮고 뿌리가 집 기초를 들어 올릴 수 있으니 문제이다. 허가를 받고 잘라내려 해도 만불 이상이 들테니 감당이 않된다. 다른쪽 옆집 오크추리도 아주 작은 것이었지만 이미 크게 자라나서 장차 문제가 될터인데, 어릴 때 잘라버리지 못한 탓이지만, 그때는 심각해짐을 몰랐었다.
우리 집 앞뜰을 특징 짓는 것은 세그루의 나란히 선 야자나무인데, 높이가 7~8m, 몸통 지름 50cm 정도로 지난 30여년간 별로 자라난 것 같지 않다. 우연히 30년전 앞마당 사진과 비교해 보니 2배 높이로 자라난 것이 아닌가? 매일 보는 사람은 그 변화를 모르는 법이며, 이렇게 또 30년이 흘러가면 키 큰 거목이 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집 야자나무는 아쉽게도 대추야자, 즉 종려나무는 아니다. 대추야자는 햇빛이 뜨거운 사막지대에서 자라며 한그루당 매년 250파운드 쯤의 아주 당도 높은 열매를 맺는다. 우리 동네에서는 자라기는 해도 열매도 맺지 않는데, 그루당 가격이 1만불 이상이다. 5~6년전 팜스프링스 인근에 가보니 수 많은 대추야자 농장이 있었다.
그 이외에도 사이프러스, 동백나무, 비파나무, 레몬나무, 그리고 수 많은 작은 나무와 화초들이 있다. 아주 오래된 몬스텔라는 물을 자주 주지 못해서인지 굵은 줄기가 말라 없어지고 뿌리에서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7~8년전 심어 놓은 천사의 나팔꽃도 줄기가 마르고 뿌리에서 다시 새줄기가 돋아나고 있다. 가장 많은 것은 다육이 종류인데, 20~30cm 높이로 장미꽃 같이 활짝 핀 것들(Brian Rose)도 있고, 여기저기 높이 1m 이상으로 큰 무더기를 이룬 것들(Jade Plant)도 있다. 요즈음 큰 화분에 용과(Dragon Fruit) 열리는 선인장을 키우고 있다. 이렇게 앞뒷뜰의 나무와 화초들을 돌보는 것도 일종의 낙이다.
필자는 어릴 때부터 화초 가꾸기를 좋아 했는데, 지금도 포항 아파트 베란다에 크고 작은 식물들이 50개 화분에 담겨져 있다. 이러한 취미는 선친께 물려받은 것이다. 선친께서는 194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공직에 계셨는데, 틈틈이 마당에 선인장, 영산홍, 소나무 분재 등 화초도 키우시고, 인근 밭에 밤나무, 사과나무, 포도나무 등도 심으시고, 또한 오골계도 키우셨다. 필자는 어리지만 나무심기, 화분갈기, 꺾꽂이. 삽목 등을 직간접적으로 많이 배운 것 같다. 4년 전에 옮겨온 캠퍼스 작은 연구실에도 20여개의 화분이 있는데, 하나둘 집에서 가져온 것도 있고, 제자들이 가져온 것도 있지만, 새로 싹티운 것들도 있다. 한 동네 지인이 연구실을 방문하고 ‘쓸만한 화분 하나도 없다’ 일갈한 적이 있지만, 다 자란 화분을 가져 온 것이 아니라서 보기에는 그리 멋져 보이지 않을 수 있다고 본다.
매일 아침 일찍 연구실에 오면 이 화분들에 물을 주는 것이 하루의 일과중 하나이며, 잠깐 시간이 날때마다 하나하나 살펴보길 좋아한다. 한 제자가 가져온 몬스텔라가 꽤 크게 자라고 있었는데, 2주 정도 사무실을 비운 사이 뿌리 부분이 말라버렸다. 그래서 줄기를 여러 개 잘라 꺾꽃이를 했는데, 어떤 것은 쉽게 자라났지만 어떤 것은 두어 달이 지나도 새싹이 나올 기미가 없었는데, 기다리고 기다리다 보니 어느 순간에 작은 잎사귀가 돋아나는 것이 아닌가? 지금 LA에서도 필자는 일부 메마른 화초들을 손보며 비를 기다린다. 스프링클러로는 부족하고 물도 아껴야 하니, 비가 와야 마른 알로베라, 다육이 등도 살아날 것이다. 물론 앞뜰 한구석에서 수선화도 돋아나 35년째 희고 노란 꽃을 피울 것이며, 나도 문득 ‘Seven Daffodils~’를 불러보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