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태 공학박사(라이프기자)

▲ 정상태 공학박사
‘꿀꿀이죽’을 아시나요? 혹은 유엔탕(UN탕)은 한국 전쟁 당시 한반도에 주둔하던 미군부대에서 먹고 남은 잔반을 재활용해서 만든 잡탕이다. 나라에 기근이 들어 피난민들이 주로 먹던 음식으로 돼지사료에 빗대어 꿀꿀이죽이라고 불렀다. ‘부대찌개’와 더불어 전쟁이 요리한 음식의 처절한 역사의 반열에 속한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이 후 출산율이 급증하며 탄생한 세대가 지금 초로의 60대들이다. 당시 전쟁의 상흔으로 한반도를 잿더미가 되었고, 이들은 경제개발 5개년이라는 기치아래 강력한 대통령의 리더십으로 국가의 어려움을 딛고 일어섰다. 속칭 우리 모두는 후진국에서 태어났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태어난 세대로 전체 인구의 15%를 차지하고 있다. 그나마 이 세대들은 다행스럽게 꿀꿀이죽이라도 맛볼 수가 있었지만, 그전의 부모님 세대들은 속칭 ‘보리 고개’라 하여 굶어죽은 이들도 많았던 힘겨운 대한민국의 과거였다.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 세대의 사람들은 강력한 영도자 아래 새마을 운동과 빈곤퇴치를 위해 산업화 된 조국을 꿈꾸며 허리띠를 졸라매었다. 당시 부모들은 한 끼의 식사도 해결하기 어려운 시기였으나, 자신들의 아이들만큼은 가난하게 살게 하지 않으려는 일념으로 교육에 온 힘을 쏟았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룬 산업화된 세상을 열었다. 중진국의 삶이다.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개발과 산업화의 구축이 있었다. 우리는 이 시기에 중진국, 혹은 개발도상국이라는 이름아래 ‘88 올림픽’을 치르고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세상에 알렸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고속 성장 이후, 경제 발전과 더불어 국민들의 생활수준은 크게 향상되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사회적 불평등, 지역 간 차이, 그리고 청년 실업 등의 문제도 드러났지만, 개발도상국 당시, 7080으로 불리는 문화는 거대한 꽃을 피웠다. 당시 7080세대는 대학가의 자욱한 최루탄과 함께 민주화 투쟁에도 앞 장 섰다. 그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청년들은 캠퍼스의 잔디, 통기타와 청바지, 다방같은 낭만적 문화를 향유했다.

주로 음악다방이라 불리는 지하실의 컴컴한 공간에서 자욱한 담배연기와 함께 디제이가 들려주는 올드 팝을 즐겨 들었다. <카펜터스>의 탑 옵더 월드, 지난날이여 다시 한 번, <올리비아 뉴턴 존>, <비틀즈>의 헤이 주드, 에스터데이, <진추하>의 원 섬머 나잇, 아바(ABBA), 통기타와 포크송, LP판과 음악다방, 대학가요제 등으로 대표되는 7080음악은 시대를 아우르며 세대 간의 교두보 역할을 했다. 학교 앞 막걸리 집에서는 가난하고 배고픈 청춘들이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시대정신을 논하고 토론하고 개똥철학을 향유하고 있었다. 물론 그 시절의 추억과 낭만은 늘 어디서든 2%가 부족한, 여전히 가난하고 어려운 세대였다.

이제 OECD가입과 경제순위 세계 10위에서 12위를 오가며 국내총생산 3만 5천불, 반도체, 정보통신기술 등 고도화된 기술력과 산업 전반의 화려한 발전을 이루었다. 이른바 선진국에서의 삶이다. 한국은 고도화된 산업을 갖춘 국가,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경제 성장, 다양한 분야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갖춘 국가. 세계에서 가장 큰 반도체 생산국 중 하나,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 같은 대기업이 글로벌 시장을 이끄는 국가가 되었다. 반도체 외에 자동차, 화학, 선박, 전자, 가전, 철강 등 전 산업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그렇게도 바라던 선진국의 삶을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었고 부모들의 졸라맨 허리띠가 자식들에게 번영을 가져다주었다.

이제 은퇴하는 기성세대는 후진국에서 태어나 중진국을 꿈꾸며 살았고, 결국 선진국의 삶을 후손에게 물려 줄 수 있는 세대가 되었다. 그러나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에서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생활수준은 높아졌지만 그리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과도한 물질만능주의와 과도한 소비, 초라한 막걸리 집에서 나라를 걱정하고 젊은 날의 고뇌와 사랑 그리고 우정 같은 단어는 구시대적 유물이 되고 말았다. 늘 비가 오면 집 앞 대문부터 시작해서 온 도로가 질척대던 나라에서 땅을 찾아보기가 너무나 어려워진 현재의 상황을 보니 부자는 되었지만 필시 마음은 충만하지 못하다.

개인주의가 너무 강조되면서 공동체 의식이 너무 약화되었다. 가족의 해체, 우울증, 고독사, 승자와 패자가 극명하게 갈리고 기술발전에 따른 인간 소외, 과도한 경쟁과 예민해진 각자의 권리주장, 사회통념상 허용되던 관용(똘레랑스)이 극단적으로 좁아지며 충돌과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돈과 물질적 가치가 상호 관용과 타인의 배려 같은 여유로움마저 물리쳐 버린 사회가 되었다. 혹, 누가 당신은 후진국의 삶과 중진국, 선진국의 삶을 모두 살아본 사람으로서, 그 중 어디가 가장 좋았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후진국은 배고파서 싫고 선진국은 너무 빠른 라이프 사이클과 상대의 배려가 없어 싫다고 말하고 싶다.

얼마 전, 유명한 가수와 영화배우 몇 분이 세상을 떠났다. 평생 일면식도 없는, 그저 TV나 영화를 통해 알고 있는 분이지만 동 시대를 살아오신 분들의 부고에 눈물이 난다. 꿀꿀이죽과 배호, 아바를 알던, 내가 가진 아름다운 삶의 편린 중 공감하고 공유하는 삶을 살던 동년배. 그들이 시간의 장막 속에 서서히 사라짐에 그저 안타까움과 적막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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