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태 공학박사(본지 SNS기자)
한국인들만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상황이 있다. 한국전쟁이 1959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전면 남침으로 발발, 그 후 1953년 7월 휴전이 성립되기 까지 만 3년 여 계속된 전쟁 후, 휴전하였다. 그리고 70년이 지나 그야말로 경천동지, 세상을 뒤흔들 만큼 놀라게 했다. 월드컵 4강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짧은 기간 동안 후진국에서 시작해서 중진국을 지나, 중진국의 함정도 벗어나 현재 선진국이 된 국가는 대한민국을 제외하고 그런 사례는 없다. 굉장히 기이한 사례로 마치 천년 동굴에서 석주같이 한 방울 한 방울 땀과 한국인의 힘이 모여 거대한 기둥이 되어 나라를 버티게 한다.
돌아보면 가슴 애잔한 사연도 많고 그 역경이 오히려 다행일 수도 있다. 한국인의 근면성과 창의력, 그리고 기능올림픽 금메달 획득자 수, 학술대회에서 등재되는 고급 논문과 창작물의 수, 의료수준, 높은 기술의 공산품, K-시리즈로 시작되는 영화, 음악, 음식, 문화 등의 일례가 눈이 부시게 화려하다. 그러나 이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수어지교(水魚之交) 즉, 고기가 물을 만나 힘차게 나아가는 그런 현상, 이것이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라는 경제용어에도 볼 수 있다. 어떤 상황이 미미하게 진행되다가 갑자기 균형을 깨고 큰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을 말한다. K-문화 현상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어떤 반응이 한 순간 폭발적으로 일어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선제 조건이 있다. 어떤 순간이 오기까지 꾸준하게 지속되는 그 무언가가 외부의 어떤 돌발적인 변수와 만날 때 그 폭발력이 터지는데, 문제는 그 기간까지 꾸준히 지속되는 그 무언가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단 돈 1만원이라도 꾸준히 수십 년 간 저금을 해오다 복리라는 혜택에 자산이 몇 배나 불어난다던지, 작은 변화가 하나만 더 일어나도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오늘의 우리문화는 전쟁의 폐허를 딛고 서로 협력하고 밀고 당기는 가운데 생기는 지속력이 현재에 와서 세계인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이유이다.
오늘날 우리 국민은 후진국 상황의 배고픔과 보다 더 발전하려는 노력, 경쟁심과 미래의 먹거리를 걱정하고 염려하는 창의성과 첨단 의식구조가 있다. 아마도 그 모든 성향을 지닌 국민은 한국인만이 유일 할 것이다. 과거에는 배고픔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래서 전쟁 통 속에서 혹은 그 후에 남들이 나누어 주거나 버린 음식으로 연명했다. 최근 인기가 급상승한 ‘부대찌게’라는 요리도 전후 배고픔을 이기기 위한 한국인의 지혜가 담긴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음식의 세계적 유행으로 경영난에 처한 회사가 다시 매출 상승을 일으킨다고 하니, 진정 과거 배고픔을 도와 준 나라에서 자신들의 회사를 구해준 사례로 충분히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우리 국민은 후진국의 배고픔을 벗어나 올림픽과 7080 문화의 꽃을 피우던 시절, 아직도 서구권의 설탕이라든지 비계를 제거한 살코기를 입에 대기는 어려운 시기였다. 그래서 일본으로 수출되는 고기는 모두 살코기였고, 남은 뒷 고기 및 지방 등 부속고기는 한국인의 몫이었다. 탄광촌의 삼겹살, 내장 요리, 지방마다 뒷 고기와 야채를 듬성듬성 썰어 만든 유명한 국밥들, 심지어 껍데기 요리까지도 한국인은 맛있는 음식 요리로 승화시켰다. 지금 미국에서는 한식열풍이 불고 있는데, 우리네 삶의 기구함과 어려움이 현대와 만나 건강하고 특별한 맛을 내는 음식이 되었다.
이런 식으로 나열하자면 끝이 없는데, 건강상 백미, 백설탕, 밀가루가 외면 받는 시절, 과거 서구권에서는 설탕을 쉽게 구하고 소비하며 음식의 주재료로 사용할 때 우리는 귀한 설탕대신 유사 단맛을 내는 사카린도 있었다. 혹은 그 마저도 비싼 탓에 감미료를 배제한 채 다른 재료를 사용해서 맛을 낼 수밖에 없는 시절이 현대와 만나 건강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수년 간 벌어진 전쟁의 상흔으로 현실은 우리 민족에게 그리도 각박했다. 그러나 그 시절 우리가 받은 고마운 도움들이 이제는 우리가 다른 어려운 국가에 도움을 주는 국가로 바뀌었다. 혹 직접은 아니더라도 건강한 맛과 음식으로 세계인들에게 한식의 건강함을 제공하게 되었다.
가난으로 인해 설탕이나 살코기 같은 고급음식을 구할 수 없어 주위에서 쉽게 구하는 재료로 만든 서민들의 밥상. 이 한 끼 한식의 건강함이 세계인의 식탁을 바꾸고 그들의 삶을 바꾸게 되는 것을 지켜보며 “오늘 우리가 도운 사람이, 내일 우리를 도울 것이다.”라는 모토가 전혀 낮 설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