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경일보는 이들의 혁혁한 공로를 살펴보고, 향후 재난에 대응하는 모범 사례로서 재난 극복의 귀감이 되도록 특집기사 3편을 게재하기로 했다.
◇“현장에 답이 있다"… 현장 순회 통한 능동적 재난관리시스템 운영
지원청 상황총괄팀 및 현장순회팀은 매일 새벽 6시부터 3개조를 편성해 지역 내 주요 위험지역과 학교를 집중 순찰하며 화재 확산 여부를 확인했다. 밤중 피해 현황 파악과 당일 대응 방법 모색을 위해 이동하는 차 안에서 김밥으로 식사를 대신했다. 안중환 교육장은 각 과장 및 비상상황반 실무자들과 함께 산불 피해 지역 인근 학교(길안초, 길안중, 임하초, 남선초, 남후초, 일직초, 일직중 등)를 방문해 교육장 주재 현장 대책 회의를 실시하고 직접 현장을 재점검했다. 지원청은 매일 오전, 정오, 오후, 야간 긴급대책회의를 열어 학교별 학사일정 조정과 학생보호 대책을 논의했다.
2~4시간 간격으로 안동시 재난상황실 및 관제센터를 통해 주기적인 산불 양상을 파악하고, 산불이 확산될 경우 현장으로 이동하면서 학교별로 구축된 교무학사 및 행정 SNS 비상연락체계를 활용해, 상황총괄팀에서 확보하고 검증한 산불 현황을 인근 학교와 지원청 비상상황실 및 도교육청과 정확한 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했다. 직접 현장을 파악하는 지원청의 능동적인 대응으로, 각급 학교에서는 재난 상황에 대한 심리적 안정감을 가지고 신속하게 대응을 할 수 있었다.
◇도깨비불처럼 사방으로 날뛰던 화마에 휩싸인 학교, 마지막까지 현장을 사수하다.
3월 25일(화), 기온23°C, 습도21%, 남서풍이 4.3m/s로 불어오는 가운데, 순간 최대풍속은 27.6m/s를 넘나들며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의성에서 시작한 산불은 거센 바람에 안동시 길안면 일대로 빠르게 전개했고, 송진 및 화재 더미와 섞인 불꽃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산능선을 날아다니며 인근 수목을 집어 삼키고 시뻘건 혀를 내밀었다.
특히 길안면 전역이 화염에 휩싸일 무렵 긴급 대피 명령이 떨어지자 학교 교직원과 학생들의 혼잡한 상황은 절박했다. 길안면, 임하면, 남선면, 정하동, 풍천면 등지에서도 1천여명 이상 긴급하게 대피했다. 길안초와 길안중학교는 의성에 인접해 산불 최전선에 위치한 학교였다. 길안초 함미화 교장, 박동석 교감, 남정남 행정실장, 배창시 및 황정원 주무관 등은 교대 근무하며 화마로부터 학교를 지키고 있었다. 김명선 행정지원담당과 권헌도 주무관도 안동시 및 소방서와 소통하며 길안초 현장을 함께 지키고 있었다.
붉은 하늘에 유성같은 불폭탄이 산능선을 넘어 날아오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폐쇄 명령이 떨어질 수도 있어요. 길안초도 위험합니다" 긴급 무전과 함께 7명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소속 교직원과 학생들이 신속히 대피하도록 조치하고, 학교 시설 보호를 위해 전기 및 가스를 차단했다. 이윽고 길안초 동편 산까지 불길이 빠른 속도로 번지며 뜨거운 열기와 매캐한 연기가 학교를 덮쳤다.
코앞에 다가온 불길과 붉은 산능선의 뜨거운 열기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심장이 요동치는 긴장감이 압박해왔지만, 이들은 학교를 포기할 수 없었다. 길안초등학교와 길안면 도로는 이미 폐쇄됐고,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길안면에서부터 안동 시내까지 이어진 도로는 도로까지 넘어온 산불과 대피 차량 행렬이 뒤섞여 아수라장이었고, 뜨거운 열기는 차안의 이재민을 더욱 두렵게 했다.
재난 문자를 받아 길안초로 밀려오는 이재민들을 더 안전한 시내 방면으로 안내하고 안동시 재난상황실에 재난문자 정정을 요청해 인명 피해를 최소화했다. 한국말이 서투른 외국인 노동자 몇명이 뒤늦게 본관 앞으로 몰려와 떨고 있었고 이들을 안정시킨 후, 도로 폐쇄가 풀려 안전한 곳으로 이동할 수 있을 때까지 보호하며 학교를 지켰다.
길안초를 위협했던 모진 바람과 화마는 더욱 거세졌고 불길은 길안초를 지나 길안중학교까지 접근했다. 길안중학교의 권충호 교장과 김경현 행정실장은 일찌감치 소속 학생들을 모두 무사히 하교시켰다. 불길이 학교 뒤편 백자리 산을 넘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밤새 학교를 떠나지 않았다. 미처 시내 방면으로 대피하지 못한 이재민 100여명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길안초와 길안중 교직원들은 소화기를 들고 학교를 지켰다.
밤이 되면서 불길은 점차 길안중 뒤편 담벼락까지 다가왔고 학교 건물까지는 3m가 채 남지 않았다. 권충호 교장은 소방서에 연락해 긴급한 현장 상황을 알렸고 인근 소방력이 투입됐다. 소방차가 도착하기 전, 교직원들은 소방차의 원활한 진입과 신속한 진화작업을 위해서 학교 펜스 일부를 직접 해체해 소방 진입로를 확보했다. 펜스 옆 담벼락에 불길이 번지고 있었으나, 이재민들이 대피 중인 체육관과 학교 본관동을 사수하기 위해 화마 속에서 머뭇거릴 여유가 없었다. 권충호 교장의 신속한 판단과 김경현 행정실장을 포함한 교직원들의 용감한 대처는 학교 담벼락을 경계로 산불을 안전히 진압했다. 저녁 8시가 넘어서야 긴급한 상황이 종료됐고 다행스럽게도 이재민과 학교시설 모두 안전했다.
◇통학버스, 마을 주민들의 생명을 구하는 임시 구급차가 되다
같은 날, 오후 4시 50분쯤 임하초등학교에서는 손창익·권오수 주무관이 학교 통학차량을 몰고 학생들을 안전히 귀가시켰다. 임하초 이호균 교장은 오후 5시, 임하면장으로부터 오대리 주민들을 대피시켜달라는 연락을 받고 통학차량을 오대1리 마을회관으로 급파했다.
"괜찮습니다. 저희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손창익·권오수 주무관은 불타는 산을 등지고, 몸이 불편한 임하면 마을주민 18명을 차량에 태우고 불길 속을 내달렸다. 18시 27분경 안동초등학교 체육관으로 안전하게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1시간 가까운 사투 끝에, 주민들은 무사히 안동초등학교 체육관으로 대피했다. 차량을 세우고 난 뒤에도 두 주무관은 맨손으로 차량 점검을 이어갔다.
오대리 마을 출동 요청이 다시 들어와 이동하다가 통행 금지로 고립된 상황에서 그들은 밤 9시 40분까지 3시간 넘게 차 안에서 버텼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여전히 ‘다음’을 대비하는 일이었다. “통학차량을 세워두고 논두렁 밑에 숨어 있고 싶었습니다. 너무 뜨거웠어요. 하지만 불길 속 마을 주민들과 또 다른 이송 요청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라며 긴박하고 뜨거운 열기에 두려웠던 그날을 회상했다.
◇아이들과 마을 주민의 추억이 담긴 장소, 학교는 우리 손으로 사수한다
같은 날 오후 6시 30분, 기온15.8°C, 습도40%, 서풍이 6m/s로 불어왔고 순간최대풍속은 27.6m/s. 남선초 방면에도 화마가 붉은 발톱을 드러냈다. 순식간에 학교 앞산에 불이 붙어 타들어오고 불똥이 바람을 타고 튀어 학교 바로 옆산까지 산불이 확산됐다. 자욱한 연기와 화마 속에서 교직원들은 학교시설을 점검하고 중요 기록물을 챙겨 대피했다.
김영미 교장과 권재형 교감 및 윤정은 행정실장, 최종석 및 구명삼 주무관은 산불 확산 저지를 위해 교내 소화기를 모았다. 시뻘건 불덩어리가 양옆 야산을 타고 번져들며 교문까지 위협했다. "학교는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구명삼 주무관과 최종석 주무관은 불붙은 화단을 향해 소화기를 들고 돌진했다. 마침 긴급 시설 점검을 위해 현장을 지나던 지원청 이재성 시설거점센터장, 권기진 시설담당, 박일우 주무관 3명도 합류했다.
급식실 가스통을 함께 들어 옮기는 한편, 학교 소화기를 총동원해 불길 확산을 저지했다. 새벽 내내, 바람이 불 때마다 다시 불씨가 옮겨 붙을까 구명삼 주무관을 포함한 남선초 교직원들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삽으로 흙을 퍼서 불씨를 덮고 세수대야에 받은 물로 잔불을 정리했다.
밤 10시, 지원청 상황총괄팀은 임하초등학교 인근에도 산불이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남선초 진압을 마친 지원청 시설거점지원센터 직원들도 임하초등학교로 이동했다. 학교 담장 밖 마을에 불이 번졌고 학교 담장 밖 바로 아래 마을 주민이 쌓아놓은 적치물이 불타고 있었다.
소방인력이 도착하기 전 긴급 진화를 위해 마을 주민과 함께 학교의 유리창을 깨고 학교의 소화기를 가지고 나와 함께 진화 작업을 했다.
이호균 교장과 권영국 행정실장은 소방인력과 함께 마을과 학교 인근 산불 진화를 도왔다. 한 마을 주민이 그으른 얼굴을 닦으며 “임하초등학교는 100년 넘게 우리 가족과 이 마을 사람들이 함께한 마을의 일부입니다. 내 집은 타 버렸지만, 학교마저 그냥 불에 타게 둘 수는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학교는 더 이상 마을의 교육시설이 아니라, 전세대를 아우르는 지역 사회의 정신적 중심지로 역할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