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해임은 부인했지만 리노베이션 비용 문제 부각
“사기” 발언까지 꺼내며 자진사임 압박 수위 높여
월가 CEO들 “연준 독립성 지켜야” 일제히 반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 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 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향해 “스스로 물러났으면 좋겠다”고 밝히면서 연준 수장 교체설이 다시 불붙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해임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연준 건물 리노베이션 예산 문제를 부각시키며 파월 의장에 대한 자진 사퇴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에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고, 월가 수뇌부도 이례적으로 공개 반발에 나섰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현지시간) 공화당 의원들과의 만찬 자리에서 파월 의장 해임 서한 초안을 꺼내 보였다. 

이 초안은 파월 해임을 주장해온 윌리엄 풀티 연방주택금융청장이 작성해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임설이 전해지자 미국 30년물 국채금리는 장중 5%를 돌파했고, S&P500과 나스닥 지수도 한때 1% 가까이 하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백악관 회동에서 “해임 계획은 없다”며 진화에 나섰고, “연준에서 사기로 물러나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해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말했다.

하지만 같은 날 보수 성향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는 다시 강한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그가 사임하면 정말 좋겠다”며 “연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사기(fraud)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연준 건물에 옥상 정원, VIP 엘리베이터, 대리석 장식 등이 포함된 개보수 비용이 25억 달러에 달하며, 예산이 10억 달러나 초과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법적으로 해임이 어려운 파월 의장에게 간접적으로 압박을 가하며 자진 사퇴를 유도하려는 의도로 보고 있다. 

연방준비제도법에 따르면 연준 이사는 ‘정당한 사유’가 있을 경우에만 해임할 수 있으며, 통화정책상의 이견은 그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파월 해임설이 시장을 뒤흔들자 JP모간의 제이미 다이먼 CEO는 “연준을 가지고 장난치는 건 역효과를 낳는다”고 직격탄을 날렸고, 골드만삭스·씨티그룹·뱅크오브아메리카(BofA) 등 주요 은행 CEO들도 일제히 연준의 독립성을 강조했다. 

이들이 관장하는 자산 규모는 12조달러(약 1경6600조원)에 달한다.

연준은 공공기관이지만, 12개 지역 연방준비은행은 민간 은행의 출자로 설립된 특수 구조다. 

JP모간, 씨티, 골드만삭스 등 주요 대형 은행들이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지분을 일부 보유하고 있으며, 이 같은 구조는 월가 CEO들이 연준 독립성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한편, 내년 1월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연준 이사는 총 3명으로 늘어나며 이사회 내 영향력 확대도 예상된다.

정치적 외풍 속에 이달 말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파월 의장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도 주목된다. 최근 경제 지표 둔화로 금리 인하 기대가 커지고 있지만, 정치적 압박이 거세질수록 연준의 중립성은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