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인 김덕남이 다섯번째 시조집 '문워크' (목언예원 刊)를 최근 펴냈다.
이번 시집은 총 5부 구성으로 '호두 속 순례' '유리창나비' '그림자 아이' '바람집' '슬픔의 잔량' 등 72편의 작품을 5부로 나눠 실었으며, 시인이 수년간 축적해온 감각의 층위를 깊고 넓게 펼쳐 보인다.

그 동안 '젖꽃판' '변산바람꽃' '거울 속 남자' , 현대시조100인선 '봄 탓이로다' 등의 시조집을 통해 사물과 감정의 미세한 진동을 포착해온 그는 이번 '문워크'를 통해 한층 확장된 감각과 사유의 지형을 제시한다.

그는 시조집 첫머리에서‘시조로 하는 말'로 “세상의 죽비를 향해 종아리를 걷는다”고 표현했다. 이는 스스로를 시대 앞에 선 감각의 수행자로 위치시키는 선언이기도 하다. 작열하는 땡볕과 작달비 아래서, 맨몸으로 감각을 열어두고, 일월(日月)의 불길로 익어가는 과일처럼 언어를 숙성시키는 태도는 이 시집 전반에 일관되게 흐른다.

작품 해설을 쓴 손진은 문학평론가는 김덕남 시의 핵심을 ‘감각의 파동점’이라 명명한다. “김덕남의 시는 어디서 어떤 이미지가 나올지 예측할 수 없는 감각을 갖추고 있다”며 “예기치 못한 발상의 전환과 사물의 이면을 더듬는 촉수가 작품 곳곳에 살아 숨쉰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감각은 “내 안에 물구나무서며 천리 밖을 떠”(「시인 증후군」), 혹은 “쥐가 갉아먹는 적산가옥 같은 몸”(「쥐」)과 같은 이미지로 구현된다. 이는 단순한 시적 표현이 아니라, 시인이 마주한 고독과 육체적 해체의 고통 속에서 끌어낸, 감각의 생존 방식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이 시집이 보여주는 감각의 ‘재구성’과 ‘재배치’다. 시인은 전통적인 시조 형식 안에서 새로운 언어와 이미지의 조합을 실험하며, 시조의 서정성을 해체하거나 갱신하는 방향으로 끌어올린다. 시조의 뼈대는 유지하되, 그것을 구성하는 언어와 세계는 놀랍도록 현대적이고 감각적이다.

문학적 성취뿐 아니라, '문워크'는 시인이 어떤 세계를 어떻게 감각하는지를 보여주는 자전적 내면의 기록이기도 하다. 기술 시대, 감정의 무게가 가벼워진 지금, 김덕남은 무게 있는 언어로 무정형의 세계를 붙잡는다. 그러면서도 결코 무겁거나 고답적이지 않다. 그의 언어는 명징하고, 때로는 낯설며, 그 낯섦은 독자에게 새로운 의미의 전율을 불러온다.

김 시인은 그동안 부산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문학, 서울문화재단 등에서 발간 및 발표 지원금을 받으며 꾸준히 창작을 이어왔다. 이번 시집 또한 오랜 시간 감각을 벼리고 다듬은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감각의 겹이 깊은 시는 독자의 내면에 파장을 남긴다. '문워크'는 제목처럼 일상의 표면 위를 걷되, 실제로는 감각의 심연을 거슬러 오르는 시적 행위다. 전통과 실험, 서정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번 시조집은 김덕남 시인의 시 세계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한편 김덕남 시조인은 경주시 고란에서 태어나 현재 부산에서 활동 중이다. 2011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해, 이후 시조시학 젊은시인상, 올해의 시조집상, 이호우·이영도 문학상 신인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하며 자신만의 시조 세계를 구축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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