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군은 고령 송림리 대가야 토기가마유적 학술발굴조사에서 삼국시대 대가야 토기조업이 이루어진 가마군이 확인됐다. |
고령군은 고령 송림리 대가야 토기 가마의 보존 정비를 위해 (재)영남문화재연구원(원장 박승규)에 의뢰해 발굴조사 한‘고령 송림리 대가야 토기가마유적 학술발굴조사’에서 삼국시대 대가야 토기조업이 이루어진 가마군이 확인됐다.
유적에서 확인 된 유구는 대가야 토기 가마 3기와 폐기장 3기, 조선시대 토광묘 1기 등 총 7기이며, 유물은 토기류 170점, 금속류 12점 등 총 182점이 출토됐다. 유적에서 조사된 토기 가마는 총 3기로 모두 등고선과 직교되게 축조됐으며, 아궁이는 지형 상 낮은 남쪽에 두었다.
가마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에 가까우며, 가마의 축조 시 굴착이 용이한 기반 층에 조성 돼 있었다. 규모는 3호를 제외하고 길이 520∼560㎝, 너비 120∼160㎝, 잔존깊이는 20∼60㎝ 정도이다.
소성부 내부에 함몰된 벽체편과 천장편에서 식물성 부재가 섞여 있고, 가마의 일부가 지상에 드러나는 반지하식의 구조로 보여 진다. 내부 바닥시설은 연소부와 소성부에 낮은 단이 형성된 유계무단 식 구조로 보여 지며, 3호는 연소부에 타원형 수혈이 확인됐다.
이는 가마 내부에서 소성하는 주력제품의 차이로 보여지는데, 즉 1·2호 가마에서는 塼(전돌)을, 3호 가마에서는 대호(큰 항아리)를 토기와 함께 소성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가마의 구조 및 출토유물을 통해 볼 때 삼국시대의 5세기 후엽∼6세기 전엽 사이에 조업이 집중되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고령 지산동고분군 등에 공급했던 생산유적 토기 가마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고, 대가야 궁성지 등에서 수습된 전이 실제로 이곳 고령에서 생산되었음을 확인한 첫 번째 사례로 학술적인 가치가 높다.
또한 생산유적이 처음으로 조사됨으로 향후 생산과 유통구조를 밝힐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고령군은 고령 송림리 대가야 토기가마유적 학술발굴조사에서 삼국시대 대가야 토기조업이 이루어진 가마군이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