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연합(EU)이 역내 산업 보호를 내세워 철강 수입 규제를 강화하기로 하면서, 한국산 철강이 미국에 이어 또 한 번의 관세 폭탄을 맞을 위기에 놓였다.
스테판 세주르네 EU 번영·산업전략 수석 부집행위원장은 7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 X(옛 트위터)에 “유럽의 철강 공장과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수입산 철강의 무관세 할당량을 절반으로 줄이고 관세율은 현행 25%에서 50%로 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자국 철강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자 EU가 대응 차원에서 시행한 ‘철강 세이프가드’ 제도를 대체하기 위한 것이다.
세이프가드는 내년 6월 말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따라 자동 종료될 예정이지만 EU 집행위는 “유럽 철강산업 보호를 위해 보다 강력한 무역 제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연장성 조치를 준비해왔다.
세주르네 부집행위원장이 밝힌 새로운 관세 체계는 입법 절차를 거쳐 시행되며 늦어도 내년 6월 이전에는 발효될 전망이다.
관세가 두 배로 오르고 무관세 쿼터가 절반으로 줄면 EU 시장에 의존도가 높은 한국 철강업계에도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한국무역협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對)EU 철강 수출액은 약 44억8000만달러(약 6조2000억원)로, 미국(43억4700만달러)을 제치고 최대 수출시장으로 올라섰다.
EU는 쿼터제를 운영해 일정 물량까지만 무관세를 적용하지만, 이번처럼 쿼터가 대폭 축소되면 실질적인 관세 부담은 크게 늘어난다. 실제로 지난 4월에도 EU가 세이프가드 물량을 일부 줄이면서 한국산 쿼터가 최대 14% 감소한 바 있다.
이번 정책은 미국과의 철강 관세 협상 전략과도 맞물려 있다. EU 역시 현재 미국의 50% 관세 적용을 받고 있으나, 양측은 ‘저율관세할당(TRQ)’ 방식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EU는 우선 관세를 미국 수준으로 올린 뒤 향후 협상을 통해 유럽산 철강에 대한 관세를 인하받겠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결국 미국과 EU의 동시 압박으로 한국 철강산업은 수출길이 더욱 좁아질 가능성이 크다.
업계에서는 “미국과 유럽이 모두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벽을 높이는 상황에서 정부 차원의 대응 전략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