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訓民正音) 곧 오늘의 한글을 창제해서 세상에 펴낸 것을 기념하고, 우리 글자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한 국경일이다. 1926년에 음력 9월 29일로 지정된 ‘가갸날’이 그 시초이며 1928년 ‘한글날’로 개칭되었다. 광복 후 양력 10월 9일로 확정되었으며 2006년부터 국경일로 지정되었다. 또한 세종어제(世宗御製) 서문(序文)과 한글의 제작 원리가 담긴 『훈민정음(訓民正音)』은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것은 1997년 10월 유네스코(UNESCO)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으로 등록되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진짜 이유는 백성을 위한 진심이었다. 지금부터 600백 년 전 백성을 위하여 문자를 만든 것이 오늘날의 한글이다. 백성에게 올바른 글을 가르치는 것이 정치이고 민주(民主)다. 당시의 제도는 군주(君主)였지만 정치는 민주였다.
문맹(文盲)인 백성의 안타까움을 어쩌면 해결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끝에 한글(훈민정음)을 만들었다. 소위 말하는 언문(諺文)이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반포하기까지 우리에게 말은 있었으나 그것을 적을 글자는 없었다.
말은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받는다. 말은 말을 하는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그것을 들을 수가 없다. 이러한 제약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 글자이다. 말을 글자로 적으면 먼 곳에 있는 사람에게나, 다른 시대에 사는 사람에게도 지식과 정보, 자기의 생각을 전달할 수가 있다. 글자가 없으면 지식의 축적, 문화의 발전을 기대할 수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말을 적을 수 있는 글자가 없어서 중국의 한자를 빌어다가 변형하여 쓰거나 그대로 썼다. 불편할 뿐만 아니라 생각을 정확하고 세세하게 적을 수가 없어 일상생활은 물론 문화 발전에 커다란 장애가 되었다. 이러한 장애를 걷어내기 위하여 세종대왕을 비롯한 집현전 학자들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이다.
1443년 '훈민정음' 창제 당시 기존 지식인들이 강력하게 저항했지만, 3년이 지난 1446년에야 천지인(天地人). 태극. 음양 등 성리학적 원리를 보완한 뒤 설명서를 포함해 공식 반포했다. 이후 의사소통 도구를 갈구하던 민간에 급속도로 전파되었다.
조선조 말 1907년 '국문연구소' 설립, 이후에 주시경 등이 작업해 자음(홀소리) 모음(닿소리) 정리, 맞춤법 만들고 간편하게 한 후 '근대화 훈민정음' 한글이 탄생되었다. 구한말 조선을 방문한 중국학자들 "농부도 편히 글을 읽으니 군자의 나라가 맞구나" 라고 감탄하였다고 한다.
제579주년 한글날을 되새기며 정치인들은 정쟁을 멈추고 참된 민주(民主)가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