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0억달러 대미 투자 패키지 놓고 협상 교착 지속
韓, 통화스와프·직접투자 비율 제한 등 수정 제안 내놔
러트닉 만나는 김용범·김정관…사실상 마지막 각료 협상
구윤철·여한구도 방미 중…정부 총력전 체제로 전환
중국 변수·핵연료 이슈도 협상 지렛대로 부상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왼쪽)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연합뉴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왼쪽)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연합뉴스

한미 양국이 3500억달러(약 499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를 둘러싼 관세 협상의 교착 상태를 풀기 위해 총력전에 나섰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6일 미국을 방문해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양국은 지난 7월, 미국이 한국에 예고한 상호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대신, 한국이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추진하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투자 방식과 실행 방안을 놓고는 이견이 이어져 왔다.

한국은 전체 투자 중 현금 지분 투자를 약 5% 수준으로 최소화하고, 나머지는 보증과 대출로 구성하자는 방침이지만, 미국은 일본과 체결한 협약처럼 사실상 ‘백지수표’ 형태의 투자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은 △무제한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 △직접 투자 비중 제한, △투자처 선정 시 상업적 합리성 보장 등을 조건으로 제시했다.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투자 양해각서(MOU)에 서명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 사실상 '배수진'을 친 상황이다.

김정관 장관은 지난 9월과 10월 초 러트닉 장관과 뉴욕에서 두 차례 만나 협상을 벌였으며, 우리 측이 제시한 ‘수정 제안’에 대해 미국 측이 일부 긍정적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조현 외교부 장관도 최근 국회에서 “미국이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고, 현재 검토 중”이라고 밝히며 협상 진전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이번 방미에 김용범 실장이 새롭게 합류하면서, 경제정책 핵심 인사들이 총출동하는 모양새다. 이달 말로 예정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과 한미 정상회담이 유력시되는 가운데, 이번 회담은 사실상 마지막 각료급 대면 협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앞서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15~16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리는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 및 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 참석차 출국했다. 구 부총리는 이 자리에서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과 만나 관세 협상을 측면 지원할 예정이다.

정부는 미국이 ‘전액 현금 투자’ 요구에서 한발 물러나 절충안을 제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직접 투자 비중 조정과 제한적 통화 스와프 적용 등, 실현 가능한 수준에서 타협이 이뤄질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다만 통화 스와프 체결은 연방준비제도(Fed)의 권한인 만큼, 이는 실현 가능성보다는 한국의 부담 여력을 강조하려는 협상 카드로 해석된다.

협상에 정통한 소식통은 “한국에 무리한 요구를 계속하면 결국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게 된다는 점을 미국에 강하게 전달해 왔다”며 “미국도 이에 대한 일정한 이해를 보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전했다.

관세 협상은 겉으로는 통상이슈지만, 우라늄 농축이나 핵연료 재처리 등 한국의 숙원 현안과도 맞물려 있다. 이 분야에서 일부 성과가 도출될 경우, 대미 투자 비용에 대한 국내 여론도 한층 관대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최근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와 ‘미국 조선업 재건’을 내세운 한화필리조선소 제재 조치 등도 미국이 한국과의 협력 필요성을 절감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정부는 이번 방미 협의에서 투자 방식과 수익 배분 구조 등 핵심 쟁점에 있어 의미 있는 진전을 도출하고, APEC 정상회담 전까지 양국 간 입장차를 최대한 좁힌다는 방침이다.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