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동 부국장
군사력은 국가의 힘과 조직력을 보여주는 가장 명확한 증거다.
최근 경주 황남동 1호 목곽묘에서 출토된 말과 사람의 갑옷, 투구, 안장, 재갈 등은 이러한 신라 군사력의 실체를 생생히 드러낸다. 특히 완전한 형태로 확인된 마갑은 신라가 조직화된 중장기병 부대를 운용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다. 체계적 군사 전략과 군 조직, 그리고 외세의 침략 속에서도 왕경 서라벌을 지켜낸 방어 능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무덤 주인은 금동관 일부, 금귀걸이, 큰 칼 등 출토 유물로 볼 때 신라 최고위층 장수로 추정되며, 치아 마모 상태로 당시 30세 전후였던 것으로 분석됐다. 주곽과 부곽으로 구성된 무덤에서는 주인의 인골과 금동관, 부장품, 순장된 시종 인골 1구가 확인됐다. 부곽에서는 팔다리를 벌린 순장자 흔적과 말 관련 유물, 갑옷, 투구, 안장, 재갈 등이 출토됐다.
이번 발굴은 한 무덤을 밝히는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목곽묘에서 적석목곽분으로 이어지는 고분 양식의 변화는 국가 체제 발전과 직결된다. 고분의 형태가 달라졌다는 것은 권력 구조와 군사 조직이 달라졌음을 의미하며, 신라가 중앙집권적 체제를 구축하고 군사력을 조직적으로 운영했음을 보여준다. 무덤 주곽에서 발견된 금동관 일부와 부장품, 시종의 순장 인골까지 포함된 출토품은 당시 사회의 위계 구조와 군사적 위상을 짐작하게 한다.
이러한 역사적 실체는 오늘날 우리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오는 10월 31일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는 신라의 군사적 상징을 현대의 외교적 상징으로 확장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다. 이번 회의에는 미국의 트럼프 전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 주석을 비롯한 아시아·태평양 주요국 정상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경주 보문단지 일대는 육·해·공 전방위 경계망을 갖춘 초고강도 보안 구역으로 지정되어 모터케이드 훈련, 해상 특수기동정 배치, 드론과 탐지견 투입 등 막바지 경호 훈련이 진행되고 있다.
21일,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진영승 합참의장은 경주와 포항 일대 작전부대와 경호 상황실을 점검했다. P-8 해상초계기 지휘 비행, 해병부대 감시·경계 작전 확인, 경호안전종합상황실 방문 등 빈틈없는 준비가 이어졌다. 이번 회의 지원에는 2작전사령부를 중심으로 3600여 명의 병력과 육·해·공 전력이 투입되며, 경찰과 해경은 경호·경비, 교통관리, 돌발 상황 대응을 위해 최대 1만8500명을 투입하고 특공대 장갑차와 헬기 등 최신 장비를 동원한다.
이러한 준비는 안전 확보를 넘어 국가 이미지와 외교 전략의 일부이기도 하다. 과거 5세기 신라 장수가 왕경을 지켰듯, 오늘날 한국은 경주라는 역사적 공간에서 국가 브랜드를 동시에 지키고 있다.
신라의 장수와 그의 말을 지키던 유물은, 현재의 외교 무대에서 안전과 위상을 보장하는 장치와 겹쳐져 시간적 교차를 이루고 있다. 이번 발굴성과가 일반에 공개되는 것은 APEC 정상회의 기간 동안 문화외교 자원으로 활용되기 위함이며, 신라의 군사적 전통과 국가 체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이 성과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유물을 보존하고 이를 연구하며, 문화외교 자원으로 활용하는 과정에는 지역사회와 전문가, 정부의 협력이 필요하다. 신라의 군사력과 고분 양식 변화는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국가 조직과 전략의 체계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기록이다. 이를 현대 외교와 연결하는 노력은 단순히 전시의 차원을 넘어 국가 전략과 문화외교의 연장선이 되어야 한다.
결국, 1600년 전 신라 장수의 군사력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의 외교력과 직결된다. 경주 황남동 1호 목곽묘의 발굴과 출토 유물은, 국가 체제와 군사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APEC 정상회의에서 국제사회에 한국의 역사적 위상과 문화적 힘을 알리는 자료가 된다. 이번 행사는 정상회의를 넘어,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는 역사적·외교적 교차의 장이 될 것이다.
국가유산청은 발굴 성과를 2025년 APEC 정상회의 기간인 27일부터 11월1일까지 국민과 외국인에게 공개하며, 주요 유물은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신라월성연구센터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신라의 군사력이 잠에서 깨어난 지금, 그 힘은 경주라는 도시를 통해 현대 외교의 심장으로 다시 박동한다. 역사적 유산과 현대 외교, 국가 전략이 맞물리는 순간, 우리는 단지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서 미래를 설계하고 있는 것이다. 경주에서 깨어난 신라 장수는 과거와 현재를 잇고, 세계무대에서 한국의 역사와 국력을 알리는 살아 있는 상징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