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문 한동대 교수

이번에는 항공편을 이용하기로 했다. 10월 3일 포항경주공항에서 출발시간이 오후 8시 45분이라 김포공항에 도착하면 밤 10시가 되니 좀 늦기도 하고 8일 되돌아올 때는 김포공항에서 떠나는 시간이 오전 9시 10분이라서 8시까지는 나가야 하니 아침에 좀 서둘러야 하는 게 좀 불편하기는 했다. 그러나 포항 양덕동 우리 집에서 공항까지 내 차를 몰고 가고 며칠이든 주차장이 무료이니 돌아올 때 편하기도 하므로 여러모로 생각하여 몇 년 만에 서울행 항공편을 이용하게 된 것이다. 하나뿐인 진에어 운항스케줄이 저녁 늦게 떠나고 아침 일찍 도착하는 등 하루 왕복 1회뿐이라 미국이나 동남아 여행시 포항에서 서울까지 국내항공편을 이용하지 못하니 평소 안타까운 경우가 많다.
떠나는 날 포항을 포함한 남부지방에 비가 크게 내렸다. 이륙 한시간 전에 겨우 공항에 도착했는데, 역시 폭우 탓인지 ‘제주공항발 포항착 – 포항발 김포행’ 항공기가 1시간 30분 늦게 포항경주공항에 도착했다. 그 정도 기다리는 건 보통 있을 수 있다고 보지만 항공기가 10시 15분경 이륙했는데, 11시 이전에 김포공항에 도착하지 못하면 좀 먼 인천공항에 착륙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종이 보잉737로서 좀 작은 탓인지 아니면 날씨 탓인지, 기내 방송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소음이 심했는데, 비행기는 다행히 10시 55분에 김포공항에 도착했고, 거기서 택시를 타고 무사히 목적지에 11시 45분경 도착할 수 있었다.
다음날도 가끔 폭우에 종일 보슬비가 내렸다. 아침 식사 후 여행용 소형 우산을 들고 주변 산책에 나섰다. 서울 형님 집은 오류동 지나 부천 인접한 항동이라서 서울시 영역으로서는 변두리이긴 하지만 나름 건물도 사람도 많은 곳인데, 추석연휴라서인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과거 그린벨트였던 지역이라 아직도 숲과 공원이 많은 이곳은 아름다운 ‘푸른 수목원’과 ‘항동저수지’가 있는 곳이다. 20년 전만 해도 이곳은 개발이 않되어 주변에 숲도 많고 논밭도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수목원이 크게 들어섰고, 한편에 고층아파트들이 세워지면서 신시가지가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전반적인 풍경이 밉지 않다. 서울이면서도 숲으로 둘러싸인 포항 교외의 한동대 캠퍼스와 비슷해 보인다. 20년 전에는 항동저수지를 찾는 철새들, 특히 청둥오리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왜가리 몇 마리가 물가를 거닐 뿐이다. 그 당시에는 낚시꾼이 많았는데, 이제는 수목원이 되어 낚시를 금지하고 있다. 일부러 풀어놓은 비단잉어만이 아니더라도 이곳에는 붕어, 잉어, 가물치 등이 많아진 것 같다. 물론 희고 붉은 연꽃, 커다란 원판 같은 빅토리아 수련 등 수초들도 많아졌다. 호수 한편 수면 위로 데크 길이 이어져 사람들은 호수를 즐기며 사진 찍기에 바쁘다.
우리 집에서는 추석날 아침 8시에 차례를 지내는데, 많이 간소해진 편이나, 이를 준비하는 이들의 수고는 변함이 없다. 숙부들께서 살아계실 때는 오후에 어머니를 뵈러 오시는데, 이제는 숙부 두 분도 몇해 전 돌아가시고 만 100세 되신 어머니는 병원에 계시니, 오후에는 시간 되는 형제자매들이나 잠시 들를 뿐이다. 추석은 우리나라 최대의 전통 명절로서, 어릴 때부터 경험한 추석 풍경들이 뇌리에 생생하다. 서울역의 미어터지던, 머리 위에서 긴 장대로 사람들을 정리하던 모습, 서로 자리 잡으려 달리던 모습, 만원버스 같이 혼잡하던 완행열차, 그리하여 10시간 걸려 고향 집에 갔었다.
추석날 아침은 조부댁에서 차례를 지내고 고향 동네 어른들을 만나 뵈었다. 그 후 5~6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경제산업과 사회문화가 크게 변모되고 우리의 생활 습관도 크게 변모되어 추석연휴 풍경도 크게 바뀌었다. 예전에는 차례를 지내기 위해 어떻게든 고향을 찾았고 조부모님, 여럿 장년이 된 자식들, 그리고 손자손녀들이 차례상 앞에 모였었다. 그러나 이제는 어른들 대부분 돌아가시고, 몇 않되는 자식들이 추석을 맞게 되었는데, 한둘인 자식들은 혼기가 넘어도 미혼인 경우가 많고, 결혼해도 자녀가 하나 뿐인 경우가 많으며, 긴 추석연휴를 기회로 해외여행을 떠나는 경우도 많으니 어차피 조촐한 만남이 되기 마련이다.
필자는 만 100세 되신 어머님과 70대 중후반의 형님이 있는 서울로 추석을 쇠러 간다. 큰 집에서는 추석날 아침 차례 준비로 바쁘지만, 저녁에는 출가한 여러 자매들과 자식들이 각자 자기 집 차례를 지내고도 함께 모여 식사를 나누는 전통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잘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틈나는 사람들만 오후에 잠시 모일 뿐이다. 필자도 이런 때 이외에는 포항에 있거나 미국에 가 있으니, 조카들 만날 기회가 별로 없다. 사촌과 외사촌 등 가까운 친척들도 10여년간 거의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물론 형님이야 고향 선산에 모신 부친 산소 성묘 때, 그리고 5대조 할아버지를 함께 둔 고향 친척들이 1년에 한번 시제를 지낼 때 만나고 있지만, 필자를 비롯한 좀 젊은 층들은 이를 잊고 있으니 않타까움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