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은 인류가 가장 오래 사용한 가치 척도이자 교환 수단이다. 불확실한 시대마다 사람들은 종이 돈보다 금을 믿었고 전쟁, 인플레이션, 달러 약세가 겹칠 때마다 투자자들은 안전 자산으로 금을 선호했다.

23일 기준 국내 금 시세는 g당 18만9320원, 1돈(3.75g)은 70만9951원으로 전일 대비 0.46% 상승했다. 국제 금 선물(Comex, GC=F)은 온스당 4106.70달러, 달러/원 환율은 1433.88원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두 지표를 단순 환산하면 g당 18만9000원대 수준이다. 달러 강세와 국제 금값의 반등이 맞물리며, 시장의 관심은 단기 금리 전망과 지정학적 리스크에 쏠린다.

그러나 불과 하루 전, 국제 금값은 12년 만에 최대 폭의 하락을 기록했다. 22일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12월 인도분 금 선물이 온스당 4,109.1달러로 마감하며 전장 대비 5.7% 떨어졌다. 올해 들어 60% 가까이 오른 상승세가 하루 만에 흔들린 셈이다. 장 초반 4300달러 선을 넘보던 금값이 장중 급락한 것은, 불안의 에너지가 한순간 시장을 덮친 결과였다.

금은 흔히 ‘공포의 거울’로 불린다. 세계가 불안할수록 금값은 오른다. 전쟁, 경기침체, 통화가치 불신이 겹칠 때마다 사람들은 종이돈 대신 금을 찾았다. 이번 급등세 역시 지정학적 위기, 미·중 갈등, 달러 약세, 각국 중앙은행의 금 매입 확대 등 복합적 불안이 쌓인 결과였다. 그러나 불안이 한순간 잦아들자, 시장은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문제는 이번 하락이 단순한 조정 국면인지, 불안정한 세계 경제의 신호탄인지다. 미국 연방 정부의 셧다운 장기화로 통계 발표가 지연되고, 인도의 최대 축제인‘디왈리’ 휴장으로 유동성이 위축된 것이 단기 요인이라지만, 근본적으로는 투자심리의 급격한 냉각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시장이 불안을 매수하던 시기에서 불안을 회피하는 시기로 넘어간 것이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금값의 급등과 급락은 글로벌 자본이 얼마나 ‘불안에 민감하게’ 움직이는 지를 보여준다. 투자자들은 실물 경제보다 심리에 의해 움직이고, 각국 정부는 그 심리를 안정 시킬 정책 신호를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금값의 롤러코스터는 단순한 시장 현상이 아니라, 신뢰의 위기가 낳은 결과다.

우리에게도 시사점은 적지 않다. 금은 안전자산이라지만, 그 안전은 ‘상대적’이다. 달러 약세가 멈추거나 금리가 반등하면 금의 매력은 빠르게 식는다. 무엇보다 금값 급등기에 뒤늦게 따라붙는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는 되풀이되는 위험이다. 불안할수록 차분해야 하고, 혼돈일수록 균형이 필요하다.

세계 경제는 지금 불확실성과 긴장의 경계선 위에 있다. 금값의 하락은 단순한 숫자의 움직임이 아니라, 불안한 시대의 징후다. 시장의 숨 고르기를 기회로 삼아 각국은 경제·정책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불안의 금(金)’이 아니라 ‘신뢰의 경제’를 향해 나아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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