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도발 유도해 안보 위기 조성… “불안정 상황 만들 기회 공략”
평양·원산·김정은 휴양지 등 ‘반응 유도용 타깃’ 메모에 적시
“체포 우선 대상” 실명도… 방첩사령부의 사전작전 정황
“강호필 배제, ㅌㅅㅂ로 한정”… 반대 인사 걸러낸 회의 구성
특검 “전략 도발 유도해 계엄 명분 삼으려 한 군사 작전”

‘12·3 비상계엄’ 사건을 수사한 조은석 특별검사팀이 10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4명을 기소하며 핵심 증거로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의 휴대전화 메모를 제시했다. 이 메모에는 북한과의 군사적 긴장을 의도적으로 고조시켜 계엄 선포의 명분을 만들려 한 정황이 담겼다.
이날 공개된 메모는 지난해 10월부터 11월까지 시기별로 정리돼 있으며, 계엄 준비와 실행을 둘러싼 구체적인 구상과 계획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10월 18일 작성된 메모에는 “불안정한 상황에서 단기간에 효과를 볼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찾아 공략해야 한다”, “불안정 상황을 만들거나 만들어진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어 “최종 상태는 저강도 드론분쟁의 일상화”라고 했으며, 평양, 삼지연, 원산 외국인 관광지, 김정은 휴양소, 핵시설 2곳 등을 “반드시 대응할 수밖에 없는 타깃”으로 지목했다. 특검팀은 이를 북한 도발을 유도하려 한 정황으로 판단했다.
같은 날 메모에는 “북한의 러시아 전투 병력 파견 공개”라는 문구와 함께 “글로벌 안보상황의 위험성을 국민들이 체감”이라는 내용도 담겼다. 이는 국정원이 북한의 러시아 파병 사실을 처음 보도한 날과 일치한다.

10월 23일 메모에는 북한의 핵실험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도발을 “군사적 명분화할 수 있을까?”라고 적으며 계엄 근거로 활용할 수 있을지 검토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같은 날 작성된 다른 메모에는 “미니멈, 안보위기”, “맥시멈, 노아의 홍수”라는 표현도 포함됐다.
10월 27일 메모에는 “포고령 위반 최우선 검거 및 압수수색”, “휴대폰, 사무실, 자택주소 확인”, “행정망, 경찰망, 건강보험 등”이라는 문구가 등장했다. 특정 정치인을 계엄 시 체포 대상으로 삼기 위한 사전 계획으로 풀이된다.
11월 5일에는 계엄 관련 지휘관 4명(지상작전사령관, 특수전사령관, 수도방위사령관, 방첩사령관)의 논의 정황이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이들을 ‘ㅈㅌㅅㅂ’로 지칭하며 “4인은 각오하고 있음”, “전시 또는 경찰력으로 통제 불가 상황이 와야 함”이라고 적었다. 계엄 명분을 만들기 위해 인위적인 충돌 상황을 상정한 것으로 보인다.

계엄 당시 사령관으로 내정됐던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 대해서는 “신뢰할 수 없음”, “감정만 앞선 것”, “이너(inner)로 들어오면 안 됨”이라고 적었다. 계엄에 반대한 인사를 의도적으로 배제하려 한 정황이 담겼다.
같은 메모에는 “중령급 이하 대다수 교체 됐음”, “체제수호 사명 자각 이제 시작됐음”, “복무여건 획기적 개선, 우군화 해야함” 등의 표현도 포함됐다. 특검팀은 이를 토대로 여 전 사령관이 계엄에 적합한 병력으로 조직적 교체를 시도한 것으로 판단했다.
11월 9일 메모에는 ‘이재명·조국·한동훈·정청래·김민석·우원식·이학영·박찬대·김민웅·양경수·최재영·김어준·양정천·조해주’ 등의 이름이 열거됐다. 이들은 계엄 시 방첩사가 감시하거나 체포를 시도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들이다.

11월 15일에는 “공세적 조치”, “자위권적 응징 태세”라는 문구와 함께 “회합은 ㅌㅅㅂ으로 한정”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ㅌㅅㅂ’은 계엄 반대 입장을 보인 강호필 전 지작사령관을 배제하고 핵심 추진 세력만으로 논의를 한정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조은석 특검팀은 이 같은 메모들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정황을 종합해 “북한의 전략적 도발을 유도하고 이를 계엄의 명분으로 삼으려 한 군사 작전”이라고 결론 내렸다. 특히 무인기가 평양 인근에 추락하며 우리 군의 작전·전력 등 기밀이 유출됐다고 보고, ‘일반이적죄’ 적용에 이르렀다.
박지영 특검보는 “의혹이 의혹으로 끝나기를 바랐지만, 설마가 사실로 드러나는 과정을 수사팀 모두가 참담한 심정으로 지켜봤다”며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시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