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반대에도 하원, 문건 공개 법안 표결 강행
매시 “공화당 100명 이상 찬성”… 트럼프 “숨길 것 없다”
엡스타인 메일에 트럼프 반복 언급… 거부권 앞두고 압박 거세져

공화당 내 이탈 조짐이 뚜렷해지고, 엡스타인 이메일에 자신의 이름이 수차례 언급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여론이 악화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결국 입장을 바꿨다. 미성년자 성착취범 제프리 엡스타인 관련 문건 공개에 반대하던 기존 입장을 접고 찬성으로 돌아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공화당 하원의원들은 엡스타인 문건 공개에 찬성표를 던져야 한다”며 “우리는 숨길 게 없다”고 밝혔다. 이번 논란은 “공화당의 성과에 찬물을 끼얹기 위한 급진좌파의 사기극”이라며 여론의 초점을 전환하려는 시도도 보였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그는 정반대의 태도를 보였다. 공개를 주장한 공화당 마조리 테일러 그린 의원을 “반역자”라고 비난하고, 다른 의원들에게는 청원 지지를 철회하라고 압박했다. 그린 의원은 “엡스타인 파일 문제로 트럼프에게 낙인찍혀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상황은 트럼프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민주당 로 카나, 공화당 토머스 매시 의원이 공동 발의한 문건 공개 법안은 하원에서 표결 상정 요건인 218명을 넘겼고, 매시 의원은 “공화당 의원 100명 이상이 트럼프의 반대에도 찬성할 수 있다”고 밝혔다. 카나 의원도 “보수적으로 봐도 40명 이상은 찬성할 것”이라 전망했다.
당초 표결을 미뤘던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도 청원 서명이 기준을 넘자 본회의 부의를 결정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공화당 내 대규모 이탈이 임박하자 트럼프가 전략을 접고 백악관의 망신을 피한 셈”이라고 분석했고, AP통신도 “이번 논란이 공화당은 물론 마가(MAGA) 진영까지 흔들었다”고 전했다.
다만 하원을 통과해도 실제 문건 공개까지는 갈 길이 남아 있다. 상원 지도부는 여전히 표결 여부를 유보 중이고, 상·하원을 모두 통과하더라도 대통령 거부권이라는 마지막 장벽이 있다.
문건 공개 요구의 배경엔 최근 공개된 엡스타인의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가 있다. 하원 감독위원회가 공개한 약 2300건의 자료 중 절반 이상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이 언급됐고, 특히 2016년 대선을 전후해 빈도가 급증했다. 엡스타인이 공범 길레인 멕스웰에게 “피해자 중 한 명이 트럼프와 자택에서 몇 시간을 보냈다”고 보고한 이메일도 포함돼 있다.
이메일에는 트럼프 외에도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앤드루 전 왕자, 래리 서머스, 빌 게이츠 측근 등 주요 인사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엡스타인은 언론계·사교계 인맥을 통해 복귀를 꾀했으며, 마이클 블룸버그 당시 뉴욕시장과 트럼프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공동 주최한 행사 초청장도 그의 메일에 포함돼 있었다.
뉴욕타임스(NYT)는 “엡스타인의 이메일은 월가 억만장자, 언론계 거물, 정치권 인맥으로 얽힌 뉴욕 상류층의 황혼기를 보여준다”며, 그가 “미투에 걸린 남성들이 ‘이 광기가 언제 끝나느냐’고 내게 연락하고 있다”고 쓴 메일도 함께 보도했다.
트럼프가 입장을 바꿨지만, 엡스타인 문건 공개를 둘러싼 논란은 이제 막 본격적인 정치 격랑 속으로 접어든 상태다.
